당신의 인생은 본인의 것인가? 가족이나 회사, 국가의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이대로 사는 게 견딜만 한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닭장 속에서 99.9%의 인도인들은 자신이 닭인 것도 모른 채 살아간다. 앞에 있던 닭이 목이 잘려나가도 탈출해야한다는 생각은 커녕 곧 내게 닥칠 일이라는 것도 알아채지 못한다.
그 속에서 본인을 '화이트타이거'라고 믿는 청년이 악착같이 탈출한다. 다신 돌아갈 건덕지가 없게 사다리까지 걷어차버린다. 보는 내내 정수리를 찍고 질문을 던지는 영화이다.
주인공 발람은 최하위 빈민층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여느 인도 가정과 다름없이 생계를 책임진다. 어릴 때 총명함이 드러나 교육받을 기회도 있었지만, 일만 하다가 쓰러진 아버지의 죽음 이후로 할머니의 수탈 아래 찻집의 석탄 깨는 일을 하며 살게된다.
하지만 그는 본인이 여느 닭들과 다르다는 것과, 이대로 가족들의 빨대에 꽃힌 채 살다간 아버지같은 결말을 맞이하리란걸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수단을 가리지 않고 기회를 잡는다.
그렇게 지주 아들의 운전기사가 되어 상류층의 사회를 엿보게 된 그는 회의에 빠지고 그를 가둔 닭장을 실감하게 된다.
'왜 아버지는 내게 양치질을 가르치지 않았을까, 왜 사타구니를 긁으면 안된다고 말해주지 않았을까, 왜 나를 한마리의 짐승처럼 길렀을까..'
견고한 울타리 앞에서 절망하던 그가 문을 부수고 나가는 계기가 발생한다. 자신을 짐승처럼 여기던 부자들과 달리 유학생답게 열린 자세로 대해줬던 주인 아쇽이 결국엔 추악한 지주의 모습과 다를게 없는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와 부인의 죄를 뒤집어 씌우려는 모습에 그는 분개하고, 그조차도 순응하고 받아들인 자신의 모습에도 환멸감을 느낀다.
인간은 얼마나 다루기 쉬운 존재인가. 날개를 한번 꺾어 놓으면 다시는 푸드덕대지 못한다.
하인은 자신이 평생 벌 수 있는 돈이 손에 맡겨져도 주인의 것을 탐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그들은 닭장 안에 있는 게 너무나 당연해서 그 열쇠를 쥐여줘도 내팽겨친다. 그들 인생의 최종 목표는 말년에 판자집이나 하나 마련해 대대손손 똑같이 사는 것이다. 아들과 손자에게도 가난한 직업을 물려준 채, 평생을 글도 모르고 석탄이나 깨면서 말이다.
한번 순응하게 되면 분노도 생각하는 법조차도 잊게된다.
카스트 제도가 지배하는 인도에만 계급이 있는 게 아니다. 사회에선 우리가 취하는 자세조차 계급이 된다. 영화를 보고 회사의 K라는 닭이 떠올랐다.
젊은 팀원 중 나이가 가장 많은 K는 늦게 입사한 탓에 경력과 직급은 제일 낮다. 사람도 동물처럼 상대가 포식자인지 약자인지, 약해보이지만 공격하기 힘든 부류인지 본능적으로 느낀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약자는 더 괴롭힘을 받기 마련이다.
K는 전형적인 약자이다. 항상 기어들어갈 듯한 목소리와 낮은 자세로 상사에게 복종한다. 그걸 알아본 상사는 또 유독 그를 압박하고 채근한다. 그 모습을 안쓰럽고 없어보여서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입사 초기의 나를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어디까지 받아들이는게 적정선인지 몰라 매번 긴장해있었고 과하게 사과하고 지나치게 용인했다. 그런 나를 팀장은 구석에 몰린 쥐처럼 가지고 놀곤 했었다.
주인의 죄를 뒤집어쓰는 각서에 도장을 찍고도 그 자리에선 차마 아무말 못하고 웃으며 주인의 발에 입까지 맞추고 나오는 발람의 모습에 내가 겹쳐 보였다.
K가 더 딱하게 느껴지는 건 약한 본체를 숨기려 '허세'라는 도구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상사가 없는 자리면 그는 욕설을 섞어가며 금방이라도 들이받을 것 처럼 얘기한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제자리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 사회는 분명 민주주의이며 그 안에 계급은 없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카스트제도도 4단계뿐이었다. 하지만 영화에 나오듯 부모의 직업, 거주지 모든 것이 계급이 된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스스로 정한 입장에 따라 갖고놀기 쉬운 쥐인지, 건드리면 피곤한 벌꿀오소리인지가 정해진다.
이 영화에서 맘에 들었던 건 결말이다. 발람은 공포스럽고 끔찍한 방법으로 닭장에서 벗어나지만, 그 행동에서 오는 괴로움은 한 달 남짓이었다.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트라우마나 죄책감에 힘겨워하지 않는다.
"영화에서는 가난한 자가 주인을 죽이고, 죄책감과 악몽에 시달리며 식은땀을 흘리고 꿈에서 깨길 바라지.
하지만 진짜 악몽이 뭔지 알아? 주인을 죽인 것이 꿈이고, 깨어났을 때 내가 아직도 하인이라는 거야."
이 한마디가 영화를 보는 수많은 사람들의 정수리를 찍었을 것이다. 당장 상사의 뚝배기를 깨서 죽이겠다는 결심이 아니다. 내가 닭장에 있다는 걸 인지했다면 그 다음은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문을 부수고 열고 나가기 위해선 그만큼의 후폭풍을 감수해야 한다. 그 악몽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가족의 끈을 다 잘라버린 발람과 지긋지긋한 시아버지의 멱살을 잡고 그 길로 떠나버린 핑키처럼 말이다.
"수년간 열쇠를 찾아 헤맸겠지만 문은 늘 열려 있었어요."
뒤에서의 허세와 뒷담화는 현실을 더 악몽같게 만들 뿐이다. 1분이라도 주인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알고싶다면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해야한다. 적어도 동물원에 갇힌 호랑이처럼 으르렁대기라도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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