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과 관계의 행복, 모험과 안주 사이에서 하는 줄타기는 모든 인간에게 여러번씩 찾아오는 숙제이다. 인투 더 와일드는 그 줄타기를 담담하면서 절절하게 표현해냈다. 극한상황에서의 숨막히는 고독을 잘 그려내서 영화가 끝난 후에도 며칠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주인공 크리스토퍼는 주변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엘리트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중시하는 일반적인 가치에 염증을 느껴 벗어나고 싶어한다. 고등학교 졸업까지 그가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것들을 '순종적인 낙타'처럼 견딘 것은 꿈을 위한 긴 사전 작업이었다. 그의 목표는 단 하나, 소비와 소유 등 세속적인 가치에서 벗어나 대자연에서 극단적으로 단절된 삶을 살아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인간 정신의 본질은 새로운 경험을 통해 얻어진다.' 는 믿음으로 모든 것들을 내던지고 자연을 향해 떠난다.
그는 많은 것에 매여 사는 어른들에게 '삶의 기쁨을 인간관계에서만 찾는건 잘못된 일'이라며 관계에서 탈피한 자유로운 삶에 확신을 보인다. 하지만 처절한 고독의 시간 후 죽음을 앞둔 순간에는 '진정한 행복은 함께 나눌 때만 존재한다'는 상반된 깨달음을 남긴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 변덕의 줄다리기를 잘 보여준다. 뒤엉켜살며 고독을 갈망하고, 막상 자유로워지면 안정을 그리워하는, 어느 한쪽에 완전히 머무르지 못하고 매번 전복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중요한 건 평생에 걸쳐서야 깨닫는 진리를(그렇지 못한 사람이 더 많겠지만) 2년의 방황, 그 중에서도 네 달의 고독으로 깨우쳤다는 것이다. 유언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그 결말을 후회하지 않아 보인다. 짧지만 온전히 자신의 선택에 의한 자의적인 삶이었고, 지독한 외로움을 땔감으로 삼아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인 것 같다.
"수많은 사람이 불행한 환경 속에서 살면서도 자신이 나서서 상황을 바꾸려고 하지는 않아요. 안전, 순응, 보존의 삶에 길들여졌기 때문이죠. 이 모든 것이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는 듯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안전한 미래만큼 인간 내면의 모험심에 해로운 것은 없죠. 인간의 살아 있는 영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험을 향한 열정이에요. 삶의 기쁨은 새로운 경험을 만나는 데서 오고, 매일매일 새롭고 다른 태양이 떠오르므로 끊임없이 변하는 지평선을 보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어요. 론, 삶에서 더 많은 걸 얻고 싶다면, 단조로운 안정감에 기대고 싶은 마음을 버리고 설령 처음에는 미친 것처럼 보이더라도 뭔가를 저지르는 삶의 방식을 받아들여야 해요. 일단 그런 삶에 익숙해지면 그 완전한 의미와 엄청난 아름다움을 알게 될 거예요.
한곳에 그대로 머물지 마세요. 움직이고, 돌아다니고, 매일을 새로운 지평선으로 만드세요.
기쁨이 오직 인간관계에서만 온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대부분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이 틀렸어요. 하나님은 기쁨을 우리 주변 모든 곳에 놓으셨어요. 그 기쁨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있고 어떤 것에도 있어요. 우리는 습관적인 삶에서 등을 돌리고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시작해야 해요."
영화를 본 직후엔 먹먹함 외에 많은 생각이 들진 않았는데, 이후 읽게 된 니체의 책에서 크리스토퍼의 삶이 계속해서 대입됐다. 그는 헨리 데이빗 소로의 삶을 동경했다는데 니체에서도 영향을 받았을지 모르겠다.
니체는 열심히 사는 허무주의자였다. '우리 인생에 별다른 목표와 의미는 없으므로 그 과정,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라고 말했다. '어차피 고통 없는 삶이란 없고, 삶은 순간의 연속이니 지금이 중요하고 순간의 선택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미루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현재가 곧 미래이니까. 지금의 선택으로 인한 순간들이 곧 미래가 되는 것이다.
크리스토퍼는 자신의 굳은 신념에 반하는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을 선택했다. 그는 20세가 될 때까지 본인이 지고 있는 가장 무거운 짐이 무엇인지 내내 생각했을 것이다. 그건 부모의 무책임, 숨막히는 사회적 기대였던 것으로 보인다. 가장 무거운 짐이 뭔지 밝혀낸 후 그는 자유의지를 찾기 위해 그것들을 내던졌다.
니체는 또 죽음과 삶은 대립관계가 아니라고 말했다. '죽음으로써 삶이 완성되며, 삶을 긍정하고 순간을 긍정하고 죽음을 긍정한다면 죽는 순간조차 행복할 것'이라고 했다. 이 문장에서 크리스토퍼의 초연한 죽음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극한의 고통을 넘어선 그는 '후회 없는 삶이었고, 신에게 감사한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음을 받아들였다. 순수히 본인이 원하는 것에 집중하여 새로운 가치를 위해 도전하는 동안 평생 깨우칠 도를 이미 깨우쳤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가 살아돌아와서 전기를 썼다면 이렇게까지 멋지게 포장되어 영화로 나오진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선택이 결코 누구나 할 수 없는 것이고, 그가 순간에 충실했다는 것은 그가 남긴 노트 몇 줄에서 누구나 알 수 있다.
'나의 사상이 가르치는 것, 다시 살고자 원할 수 있도록 그렇게 살아라.' 라는 니체의 말처럼 크리스토퍼는 자신의 철학에 따라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 이룰 바를 다 이루고 깨달은 바가 있다면 얼마나 오래 살았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30대가 되도록 내 인생의 짐은 어떤 것인지, 철학은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이 없던 것 같다. 하지만 별다른 목표를 세우지 말고 하루 하루에 집중하자고 했던 새해 다짐과, 그때 마침 보게 된 영화와, 사두고 이제야 읽게 된 니체의 책까지 알고리즘처럼 맞아떨어져 삶의 방향을 제시해준다는 생각이 든다.
나만의 철학에 확신을 갖고, 심지가 두터운 사람이 되고 싶다.
확신없이 남들따라 행복을 좇고, '월요일부터 새사람이 되어야지, 3년만 고생해 여유로운 삶을 살아야지' 하며 미래로 행복을 미루는 우리에게 긴 여운을 주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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