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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추천5

이언 매큐언 - 견딜 수 없는 사랑 이건 한 마디로 굉장히 답답하고 짜증나는 소설이다. 읽을 때마다 가슴이 조여오고 답답했다. 그 불편함이 어디서 오나 했더니 진실이 뻔히 보이는데 헛다리를 짚고 고집을 피워대는 인물들 때문이었다. '도대체 왜 조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건지, 초반부터 패리가 미친사람인건 확실했는데 왜 경찰이든 애인이든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는건지.' 이 답답함을 통해 느낀 결론은 이거다. 인간의 사고는 합리적이지 못하다. 같은 사건도 각자의 틀에 맞춰 왜곡해 기억한다. 그리고 그 믿음에 대한 집착은 인간을 파멸로 이끈다. 소설에선 '자기설득'과 '객관성'에 대한 언급이 계속된다. 객관성은 불운한 사회적 전략이라고 한다. 객관성을 유지한다면 사람들의 신뢰와 공감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우습게도 등장인물들은 다 본인이 객관적이.. 2023. 5. 1.
여름버튼, 하루키 책을 읽던 순간과 계절을 저장한다. 하루키의 소설엔 그런 힘이 있다. 그의 에세이도 매력 있지만 그런 힘은 없다. 그의 소설은 좋은 작품인지와 상관없이 항상 몰입도가 넘친다. 이해가 되든 말든 며칠을 꽂혀 읽게 된다. 보통 이북으로 읽으니 두께도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저 출근하면 책 읽으러 퇴근하고 싶고, 주말이면 아침에 눈뜨자마자 보기 시작해 빈백에 누워 읽다 잠들고, 깨면 다시 읽는 식이다.그렇게 홀린 듯 읽다 보면 어느새 두꺼운 2, 3권의 소설은 끝나있고, 언제나 그렇듯 주제는 딱히 모르겠다. 느낌은 항상 비슷한데, 뭔가 축축한 안갯속을 걸어 나온 듯하다. 하지만 여운은 오래간다. 소설 속 벌어진 일들을 몽땅 지켜보기라도 한 것처럼 지치고 허무해진다. 술이 몹시 당기고 건강한 가정식이 먹고 싶어.. 2023. 5. 1.
빠졌다 하루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시작으로 하루키에 빠져버렸다. '왜 이제야 읽게 됐지?'와 '이 많은 소설들을 다 처음 보는 뇌라 행복하다.'는 마음이 동시에 든다. 하루키의 에세이까지 죄다 빌려 독파중인데, 역시 하루키는 소설인 것 같다. 본인이 밝혔듯이. 일단은 엄청난 흡입력으로, 빨리 퇴근해서 책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든 건 처음이다. 그리고 다 읽고나면 교훈같은 건 한치도 없고, 웬지 허무하고 붕 뜨고 인생이 뭐든 맥주나 들이키고 싶어진다. 이래서 허무주의의 극치라고 하는건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읽을 땐 오히려 허무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거기선 축축한 느낌의 우울함이 느껴진다. 반면 하루키의 소설은 늘 겨울같고, 뭔가 잿빛의 바삭한 느낌이 든다. 그 기분에 빠져있는 게 좋다. 너무. .. 2022. 6. 29.
중국식 룰렛 - 은희경 울타리 안에 갇혀버린 어른들의 얘기가 이어진다. 내 인생이지만 내가 주인공인 것 같지 않고, 나만 운이 없는 것 같아 생에 큰 애착을 못 느끼는 사람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만나고 살아내는 이야기이다. 은희경 작가의 글은 항상 담백하면서도 염세스러움이 묻어난다. 그래서 좋다. 상처입은 자들을 감싸줘야 한다는 식의 교훈도 없고, 천태만상 인간세상에 대한 환멸과 그럼에도 그 속에서 살아내야 하는 인간의 무던한 받아들임을 보여주는 방식이 유난스럽지 않다. 단편중 '장미의 왕자'에 나오는 우화가 각 소설을 하나로 꿰어준다. 울타리 안에서 장미를 품고 있을 때만 아름다운 모습인 왕자는 평생을 그 안에서만 갇혀 살아야한다. 장미가 밖으로 날아가버리는 순간 왕자는 추하고 빛바랜 모습이 돼버린다. 소설의 주인공.. 2021. 1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