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제목을 잘못 지었다. 100엔의 사랑은 내가 평생 클릭도 안해봤을 눈물 질질 짜는 클리쉐범벅의 신파 러브스토리 같은 제목이다. 추천이 아니었다면 명작을 놓칠 뻔 했다.
주인공 이치코는 32살의 백수로 말 그대로 폐인처럼 부모에 빌붙어 살아간다. 부모의 장사를 돕기는 커녕 방에 틀어박혀 담배와 게임으로 하루를 보내다 결국 그런 그녀를 벌레처럼 못마땅히 여긴 여동생과 대판 싸우고 가출한다. 물론 가출이라는 것도 엄마가 준비해준 돈으로 작은 방하나를 얻는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집 밖 생활을 해본 적 없던 이치코는 100엔샵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고, 거기서 사회를 속성으로 배운다. 이상한 사람, 악연도 겪고 처음으로 사랑하는 상대도 만난다. 그 상대는 복싱 선수였고, 딱히 아름다운 사랑은 아니었지만 이치코는 그로 인해 복싱을 시작하게 된다.
사랑은 얼마가지 않았지만 그 대신 복싱에 대한 열정은 커졌고 그녀는 완전히 몰입한다. 노력이라곤 없던 그녀 삶에서 무언가에 몰두하고 목표를 정한건 처음있는 일이었다. 최선을 다해 싸운 후 서로 등을 토닥여주는 복싱 대결에 매료된 그녀는 나이제한으로 처음이자 마지막인 대회를 준비한다.
초보 실력자가 갑자기 각성해 승리하게 되는 뻔한 결말은 없다. 이치코는 엄청나게 두들겨 맞고 패배한다. 하지만 잃기만 한 대결은 아니었다. 최후의 한 방도 먹여보고, 자신을 무시했던 가족들에게 이치코를 가족으로서의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각인시켜 주었다.
대회가 끝나고 이치코는 한번쯤은 이겨보고 싶었다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겨 엉엉 운다. 감정표현이 없던 그녀가 모든 것을 털어내고 마음을 표현하기 시작한 것으로 영화는 끝이난다.
영화를 보자마자 복싱이 하고싶어졌다. 살을 쏙 빼고 완벽하게 날렵해진 모습에 자극받기도 했고, 무언가에 일상을 지배할정도로 몰입한 기분을 느껴보고 싶었다.
바로 복싱 체육관을 찾아 등록했고, 벌써 2일차 수업에 다녀왔다. 이치코만큼이나 내게도 처음 겪는 엄청난 운동이었는지 몸이 다 부서졌다. 몸에게도 새로운 근육을 쓴다는 일은 힘이 든다. 새로운 시도는 항상 처음이 어렵다.
이치코는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다가, 독립과 복싱이라는 시도로 알을 깨고 나온다. 처음 스스로 무언가에 도전하고 실패하면서 성장한다.
새로운 시도는 성공이든 실패든 무언가를 남긴다. 그 흔적이 상처일 수도 있지만 상처는 금방 회복된다. 잃는 것 만큼 얻는 것도 있다.
내 다친 근육도 회복되고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묵묵히 유지하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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