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 오랜만에 로맨스 영화를 봤다. 단순한 로맨스 영화가 아니라 보게 됐는데 슬프고 무거운 주제임에도 주인공들이 너무 예쁘고 행복하게 사랑해서 간만에 심장이 몽글한 느낌이 들었다. 영상미도 좋아서 보고나면 먹먹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느껴진다.
집안일 도우미로 고용된 루이자와 불의의 사고로 전신 마비가 된 윌은 짧은 시간 안에 깊게 사랑하게 된다. 서로 필요한 부분을 진심으로 채워줬기 때문일 것이다. 안락사 전까지 6개월의 유예기간동안 세상을 적대적으로만 대하는 윌에게 루이자는 마지막 행복과 웃음,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한다. 또 자신의 꿈이나 도전 따위는 시도해본 적도 없이 가족이라는 말뚝에 매여 우물 안에서 살아가던 루이자에게 윌은 날개를 달아준다.
루이자의 오래된 남자친구는 자신과는 7년이고 윌과는 고작 안지 5개월 됐다며 이해할 수 없다고 분노한다. 하지만 모두 아는 것처럼 감정의 깊이에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가능성을 인정해주고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끌어 내 준 사람에게 어떻게 끌리지 않을 수 있을까?
둘의 사랑이 달달해질수록 난 루이자와 함께 의아해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행복한데도 왜 죽음을 택하려고 할까? 하지만 끝부분에 윌의 오열 섞인 고백을 듣고 나면 행복할수록 죽고 싶다는 것이 이해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하고 싶은 것이 많아지고, 점차 희망을 걸게 된다. 그리고 일말의 가망성이 없는 사람에게 그 희망은 지옥으로 느껴질 것이다.
지금까지 뇌사나 전신 마비가 된다면? 이라는 가정은 많이 해봤지만 그 때마다 단순히 내 맘대로 걷고 움직이지 못해 죽고 싶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훨씬 복잡하고 불행한 문제라는 걸 알게 됐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미래를 상상할 수 없고, 살아왔던 삶마저 사라져 내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것이 정신까지 견디기 힘들게 잠식하는 것이다.
특히 윌이 건강한 시절 누볐던 파리의 카페가 그립지만 이제는 갈 수 있어도 테이블에 앉으려고 애쓰는 모습, 자신을 승차거부하는 택시들, 프랑스 소켓으로는 충전 안 되는 휠체어 등으로 좋았던 기억마저 지워지는 것이 싫어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그 상실감이 그대로 전해진다. 살아 있지만 원래의 내 모습이 아니니 끝내 내 인생으로 인정할 수 없는 마음일 것이다.
그나마 주인공은 영화여서 운이 좋은 편이다. 주인공처럼 부유하지 못했더라면 안락사조차 선택지에 없었을 것이다. 만약 죽여 달라는 말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내 목숨마저 마음대로 못하는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일까 쉽게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반대로 만약 내가 아니라 가족이나 애인의 안락사를 받아들여야하는 입장이라면 그건 더 힘든 일이 될 것이다.
그동안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의 소식을 접할 때면 안타까운 맘에 무책임하게도 “그래도 일단 살지..죽는 것보단 뭘 하든 살아있는 게 나을텐데..”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이런 경우엔 죽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죽고 사는 게 뭔가 싶다. 사지를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과 정신을 컨트롤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이 다를까?
죽음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하며 여운이 길게 남는 영화였다. 죽음 뿐만 아니라 진심을 다한 사랑이 하고 싶어지는 건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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