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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는세상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by 일인분 2023. 1. 10.

지금 주어진 삶에 만족하는가?
알고 보니 이 삶이 수천 개의 메타버스 중 하나의 세계라면? 내가 한 선택 선택마다 갈라진 경우의 수가 모두 다른 인생이 되어있다면?

B급인 척 하는 S급 영화

물론 난 더 나은 형편의 나로 살고 싶을 것 같다. 그중엔 최악의 나도 있겠지.
영화의 주인공이 바로 그 무수한 경우의 수 중 가장 최악의 삶을 살고 있는 에블린이다.

개인적으로 더 맘에 드는 버전

에블린은 영화 속 빌런 '조부 투바키'에 맞서 싸우며 다른 메타버스의 인물을 점핑해가며 만난다. 그러다 결국 그의 허무론에 동화된다. 살아볼 수 있는 모든 삶과 가능성을 다 경험하고 난 뒤 남은 건 허무함 뿐이다.
아등바등 살아가는 세탁소건, 누군가의 전부인 너굴뚜이건(너굴뚜이 최고. 너무 귀여워)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닫고 다 망쳐버리려고 한다.

한 번도 큰소리 낸 적 없고 심지어 이혼을 요구할 때조차 자기주장을 못하던 레이먼드는 이때에서야 목소리를 낸다.
"다들 싸우고 화내는 것은 모두 무섭고 혼란스러워서야.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해야 할 건
서로 친절하게 대하는 거야. 특히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선 말이지."

그리고 남편의 모습에 에블린은 깨닫는다. 메타버스의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은 존재한다는 걸.
"당신은 사랑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는 사람이에요."
'언제나 항상 사랑할 것은 있다.
심지어 멍청하기 짝이 없는 세상에서도.'

소시지 손가락 대신 발로 드뷔시를 연주하는 세상처럼 어떻게든 사람들은 방법을 찾아낸다. 누군갈 사랑할 방법을.

그리고 지금껏 빌런으로 나왔던 모든 인물을 사랑으로 비춰버린다.

영화 초반 국세청 직원은 굉장히 고압적이고 깐깐한 빌런으로 그려진다. 옷차림도 괴상하고 불친절하고, 냅다 크게 소리 지르는 이 사람은 작정하고 미움받는 역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남편 레이먼드는 그 직원에게도 직접 구운 쿠키를 나눠준다. 결국 나중에 이 밉살맞은 할머니의 마음을 돌리는 건 레이먼드의 친절과 솔직함이다.

할머니 넘 싫었지만 국세청이라니 이해가 가기도 한다.

요즘은 친절을 호구라고 생각한다. 지하철을 타면 어깨빵당하기가 십상이고 그렇다고 아무도 사과하지 않는다.
이런 세상에서 친절을 베풀었을 때 돌아오지 않으면 그건 또 분노를 일으킨다.
예를 들면 버스 기사님께 밝게 인사를 건네었는데 무시당한다던지, 평소 불친절한 동료지만 연말에 몽글몽글해진 마음으로 전한 새해 인사가 씹힌다던지.
이런 일들은 친절을 베푼 선한 마음을 순식간에 벗겨내고 '좋게 대해줘 봐야 아무 소용없는 인간들'하고 염세주의를 몰고 온다.

친절이 돌아오면 좋지만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내 친절은 이미 뿌려진 상태이다. 그걸로 하루 기분이 좋아질지 긍정적으로 받아들일지는 받는 사람의 재량이다.
일본의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는 '다른 사람이 무심코 버린 운을 줍는다.'라고 했다.
친절을 적립식으로 생각하면 어떨까. 간혹 먼저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해주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의 친절은 하루종일 마음을 따뜻하게 덥힌다. 자잘한 친절 적립으로 그런 사람을 더 끌어들이는 것이다.

배경화면으로 함. 우리는 모두 작고 멍청한 존재야.(어떤 메타버스에서건) 그러니 옆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 그냥.

허무함에 지친 딸이 모든 걸 놓아버리려고 할 때 에블린이 말한다.
"어딘가 우주의 법칙이 있을지도 모르지. 우릴 더 ㅈ같은 존재로 만들. 네가 늘 니 옆에 있고 싶은 이유도 법칙에 따른 건지도.
어쨌든 난 언제나 딸 편이야."
"그럼 나 때문에 다 버리겠다고? 망한 메타버스 말고 다른 순간에 가서 살아. 딸이 이모양인 지금 이 순간도 그저 말도 안 되는 찰나의 순간 중 하나일 뿐이야."

"그럼 난 그 순간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

허무의 베이글.

돌로 살아가는 메타버스에서 조이는 돌인데도 움직이는 에블린에게 말한다.
"You aren't supposed to move here. You're just a rock." 돌처럼 굴어!
"There are no rules!"

에블린은 메타버스에서 내가 몇 번째로 불행하건 우주의 법칙이 어쨌건 룰은 다 ㅈ까라고 한다. 그녀는 단지 늘 딸 편이고, 남편 옆에서 사랑하고 싶을 뿐이다.
성공한 버전의 인생을 살고 그 어떤 경험을 해도 허무함이 남는다면, 결국 할 수 있는 건 이 순간을 소중히 보내고 사랑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돈룩업'의 주인공들도 지구 멸망 앞에서 결국엔 사랑하는 가족들과 일상의 순간을 보내며 맞이하지 않던가.

카페에서 이 글을 쓰는 지금 아기가 다가와 내게 방긋방긋 웃어 보인다. 아기가 내게 친절을 베푼다.

사랑할 것은 어디든 있다.
everything to love, everyw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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