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라이프 시즌2를 보았다. 소재는 자극적이지만 그 뒤에 깔려있는 스토리가 생각해 볼 만했다.
주인공 '빌리'는 아이 둘에 월가에 다니는 능력 있는 남편까지, 남보기엔 부족한 것 없는 결혼 생활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사실 그녀는 소싯적 굉장히 자유분방한 연애와 성생활을 즐겼고,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하게 사랑했던 전 남자 친구 브레드를 완전히 잊지 못했다. 하필 남편과의 성생활이 지루해지던 찰나에 그 전 남자 친구가 나타나고 결국 흔들림에 무너져 결혼생활은 끝이 난다.
반응을 보니 시청자들은 대부분 빌리가 결혼을 파투 낸 주범이라며 분노했다.
마치 아침드라마에서 불륜한 남자 주인공이 맞는 몰매와 같았는데, 여자 주인공에게도 똑같은 반응이 나온다는 게 조금 의외였다.
우리나라 정서상 불륜은 유독 다들 몰입해 분노하는 중범죄이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나도 내 가정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길길이 날뛰었겠지만, 드라마이니만큼 '결혼이란 제도가 인간에게 얼마나 맞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빌리의 바람기는 분명 무책임한 것이지만 애초에 그녀는 남편 쿠퍼와 안 맞는 상대였다. 바람기로 채워왔던 그녀 안의 큰 공허함은 안정적인 남자 '쿠퍼'로는 메꿀 수 없었다.
결혼은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 함께하기를 약속하는 것이지만 그게 평생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딱 맞는 영혼의 단짝을 찾아 결혼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런 경우가 주변에 많은가?
그렇지 않다.
오늘 마침 동료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결혼식이 끝난 후 다른 동료들과 커피를 마셨는데, 그중 유부남이 세명이었다.
신랑 쪽 친척이 많다는 화제에 유부남 1이 "그게 이제 결혼하면 싸움의 시작이야.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거야.." 하며 한숨을 쉬었다. 눈빛을 보니 이미 초점이 나가있었다. 본인의 결혼생활을 반추하는 중인 듯했다. 3명 중 그나마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하던 사람이었는데 그새 갑갑해졌나 보다.
나머지 유부남 두 명은 이미 별거해 다른 상대를 만나거나, 재산분할이 싫어 마지못해 결혼을 이어나가는 상태였다. 모두 결혼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 사람들도 결혼할 땐 상대가 인생의 동반자인 줄 알았을 것이다.
50이 되면 지천명이라 했지만 사실 인간이란 그 나이까지도 하늘의 뜻은커녕 제 취향, 가치관도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숱하다. 직장도, 배우자도 맞지 않지만 억지로 불행을 술로 감추며 사는 중년이 많다.
처음 결혼할 때 신중하면 좋았겠지만, 살다 보면 모르는 성격이 드러날 수도 있고 당연히 안 맞을 수 있다. 사람 다 거기서 거기라고 하지만 글쎄? 똑같이 10년을 살아도 불행하진 않을 상대가 분명 있다.
한 번에 평생의 짝을 고른다는 건 어쩌면 무리일지도 모른다. 이래서 연애를 많이 해보라는 것이다. 실패율을 낮추기 위해서.
하지만 그렇다고 이혼이 실패라고 볼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이혼에 대한 잣대가 엄격하기 때문에 이혼 후 새로운 상대를 만나는 게 결혼정보회사를 통해서가 아니면 쉽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내 짝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사람과 고통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건 지옥이다. 이미 인지한 이상 나머지 인생은 '다른 상대와 더 나은 삶을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 속에 살아갈 것이다.
결혼은 완벽한 제도가 아니다. 완벽한 결혼보다 맞는 상대와 사는 것이 서로에게 행복한 일이다.
물론 불륜은 이런 고민 끝에 용기 있게 결단 내리지 못하는 비겁하고 미성숙한 인간이 취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선택지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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