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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서평

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by 일인분 2020. 10. 13.

 

 

 이전에 허지웅이라는 사람하면 떠오르는 것은 쿨병에 걸린 듯한 말투와 어떻게든 상대방을 찔러보겠다고 날카롭게 간 문장들이었다. 그가 투병 생활을 마친 후 성격이 변했다는 것은 방송을 통해 얼핏 들었다. 그는 정말 변해있었다. 이 책엔 그 변화와 미처 변하지 못한 속마음이 동시에 드러난다.
특히 농담이라는 제목과는 다르게 작가의 진심을 눌러 썼다는 게 느껴진다. 예전 그의 글에선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이 글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더 있어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왜곡 없이 전달되어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다듬어 쓴 의도가 전해진다.

 

 그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젊은 시절을 그처럼 고통 받으며 보내는 청년이 없길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슬프지만 그의 글이 진심으로 와 닿는 이유다. 다른 이들은 겪지 않았으면 하는 괴로웠던 삶임에도 그는 그 고통을 안겨준 결점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상처를 겪고 자란 사람들은 그 상처에 잠식당해 피해의식에 빠질 수도 있지만, 남들과 다른 짙은 그림자를 훈장같이 여기기도 한다.
이 부분에서 작가에게 동질감 같은 걸 느꼈고, 편견도 걷히기 시작했다. 물론 그처럼 가난을 크게 겪지도 부모에게 버림받아 본 적도 없지만, 사람의 상처는 상대적인 것이니까.

 

작가는 인생이 망한 것 같다는 사람들에게 조언한다. 액정필름을 붙이다 먼지 한두 개 쯤 묻을 수 있지만 우리에겐 필름을 새로 사주는 부모도 없으며, 먼지 몇 개에 집착하다 필름을 통째로 버릴 수 있으니 먼지를 참고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는 게 빠르다고. 자신과 주변의 결점을 이해하고 인내하는 태도는 반드시 삶에서 빛을 발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결점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되, 피해의식과 자조는 멀리하라고 한다. 본인이 그렇게 망가져봤기 때문이다. 나 역시 부정적인 상황에서 스스로 가해자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내 분노는 늘 정당방위였고 사단을 만든 건 상대방이거나 환경이었다. 그리고 그런 해결 방식은 같은 상황이 닥쳤을 때 전혀 도움이 되질 않았다. 단순히 그 순간만 모면하는 방법인 것이다.

악마는 당신을 망치기 위해 피해의식을 발명했다.

그렇게 결점과 방어기제로 가득한 모습으로 안 싸워도 되는 세상과 혼자 싸워온 그는 변했다. 너무 믿지 않고, 너무 기대하지 않았던 과거 자신이 사람들과의 거리감을 셈한 것이 지나치게 두터웠음을 깨달았다. 논리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 상처받고 무너질 때까지 싸우는 것도, 남을 평가하는 것도 그만 두었다.

‘뜨거움은 삶을 소란스럽게 만들 뿐 정작 단 한번도 채워지지 못했다. 더 이상 삶을 소음으로 채우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내가 정말 바꿀 수 있는 작은 걸 떠올려보자는 생각이었다.’

 

 나도 늘 인생은 혼자라고 되뇌고 다짐하지만 사실 혼자서 살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알기에 남에게 크게 의지하고 싶지 않아서다. 그러나 끝없이 사람들을 평가하고 내 결인지 판단하는 일이 나를 채워주는가 질문해보면 다 의미없는 짓이다. 남에겐 잣대를 들이대며 엄중한 기준을 요구하지만, 문제가 생기면 나는 그저 피해자이려고 애를 쓰는 모습은 정말 가증스럽다.
요즘 회사에 최악의 권태기를 느끼며, 나는 공황장애 직전의 위기상태고 날 이렇게 만든 것은 별볼일도 비전도 없는 일과 웬수같은 동료들이라고 이를 갈고 있었다. 여길 박차고 나가면 큰일을 할 위인인데 어쩔 수 없이 갇혀산단 듯이. 하지만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보지도 않은 채 선택하기 제일 쉬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꼴이었다. 그리고 새로 산 스마트워치로 측정한 내 스트레스 지수는 지극히 정상이었다. 말하기도 부끄러운 일이다.
더이상 나를 정당화하기 위해 남을 깎아내려 마음을 시끄럽게 하는 일은 그만두고 정말 내가 바꿀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시작해봐야겠다. 이를테면 다시 일찍 출근해보는 것?

 

우리의 삶은 남들만큼 비범하고, 남들의 삶은 우리만큼 초라하다. 부디 평온하기를.

 

오늘도 속 시끄러운 내게 짧게나마 평온을 다짐할 수 있게 해준 그가 진심으로 평온하길 바란다. 그의 젊은 시절처럼 고통 받는 청년들이 줄어듦과 더불어 그의 고통도 줄어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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