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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서평

아비투스 - 도리스 메르틴

by 일인분 2020. 8. 30.

 

 

아비투스: 사회문화적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제2의 본성, 즉 타인과 나를 구별 짓는 취향, 습관, 아우라

언젠가 싱가포르에서 열린 첫 북미 정상회담 시 두 정상이 서명할 때 쓴 테이블은 싱가포르 초대 대법원장이 사용하던 것을 박물관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것을 들었다. 이걸 듣고 처음 든 감정은 '참 유난이네. 의전이 다 보여지는 것만 중시하는 허영심 아닌가? 실속만 챙기면 되지 직원들 힘들게 별걸 다 시키네.'하는 반발심이였다.

 

 그로부터 한참 뒤 아비투스를 읽고 나니 그걸 의아하게 받아들인 것도 내가 가진 아비투스였구나 싶다. 저자는 인간의 품격이 심리, 문화, 지식, 경제, 신체, 언어, 사회 7가지 자본으로 결정된다고 말한다. 이 자본은 본인이 속한 계층에서 자연스럽게 체화된다는 것이다. 팩트 폭력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만큼 초반엔 화가 나서 몇 번이나 책을 덮었다. 내 취향, 독서습관, 스트레스 취약점, 미각, 예술적 관심까지 모두 내가 속한 집단 안에서 결정되었다는 건 알고 있었음에도 받아들이기 불편한 사실이다.

우리 세대가 대부분 그렇겠지만 난 부모님보다 한 단계 수직 계층이동을 했다고 생각한다. 급격하게 성장하기도 했고 그 시절엔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내가 속한 환경이 썩 마음에 드는건 아니였지만 결과적으로 한 단계 상승한 지금의 상태가 어느정도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애써 잊고 있던 내 결핍을 바라보게 된다. 특히 엘리트 집단이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익히는 스트레스와 실패 상황에서의 회복 탄력성, 대중 앞에 서는 것을 당연히 제 일이라고 생각하는 당당함, 예술에 대한 이해가 분명해 확실한 선호를 가진 것은 부러우면서도 박탈감이 들었다.

 물론 책에서 말하고자 함이 부모와 환경을 원망하라는 것은 아니다. 힘들고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충분히 노력해서 바꿀 수 있으며, 일단 자신의 아비투스를 알면 어떤 행동이 날 도약시킬지, 발목을 잡을지 알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아비투스는 돌에 새겨진게 아니다.

 특히 이미 가지고 있는 나쁜 것을 없애는 것만으로도 품위를 높일 수가 있다고 하는 점이 인상깊었는데 그 예는 휴가 때 핸드폰이 없음, 페이스북 계정이 없음, 냉장고에 가공식품이 없음 등이다. 무엇을 소유하려고 하지 않고 없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내 가치를 올릴 수 있다는 것이 고상해 마음에 들었다.

엘리트에게는 사치품을 사는 것보다 자신의 지위를 적절하게 체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관대함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주는 것이고, 자부심은 필요한 것보다 적게 취하는 것이다.

 

 얼마 전 은근히 나를 깎아내리고 얕잡아 보려하는 동료 때문에 불쾌했는데, 집에 와서도 어떻게 하면 내가 그녀에게 내가 수준 높은 삶을 살고 있다고 증명할 수 있을까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여기 나오는 구절처럼 수준 이하의 사람들에겐 반응을 없애는 것이 바로 품격을 보여주는 고상한 방법이다. 대응은 같은 위치에서나 하는 것이다.

큰 동물은 작은 동물에게 얕잡아 보이는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

 

 우리가 다 엘리트 집단처럼 살아갈 필요는 없지만, 인간이라면 자신의 모든 점에 만족할 순 없다. 단순히 돈을 많이 갖고 싶은 것뿐만 아니라 질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높은 문화생활을 향유하고 싶은 소망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내 위치를 인식하고 속하고 싶은 집단의 아비투스를 하나씩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단지 계층이동이 아닌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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