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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걸근육맨

폭식에 대처하는 방법(감정식사)

by 일인분 2023. 4. 24.

금요일 이른 퇴근시간부터 입에 드릉드릉 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빵이 먹고싶다. 갓구운 고소하고 향긋한 빵이.'
위험한 신호였다. 이번주는 운동도 많이 하고, 가끔 과식한 다음날은 도시락을 싸와서 관리한 알찬 주였는데 이렇게 무너질 수 없었다.

하지만 욕망은 계속해서 단전 깊은 곳부터 용암처럼 끓어오르고 있었고, 그리 오래 참은 것도 아닌데 빵과 과자에 대한 억압이 봉기로 터지기 직전이었다.
결국 양심과 저울질을 하다 호밀빵을 샀고, 저녁엔 내내 먹고싶던 크림치즈 불닭볶음면에 구운 만두를 먹었다. 사실 여기까진 괜찮았다.
'클린한 식단으로 관리했으니 일주일 중 몇번은 이렇게 먹고싶은거 먹고 운동하면 된다.' 라고 머릿속에선 충분히 설득하고 있었지만 죄책감은 계속 밀려왔다.
'이렇게 한끼 먹고 죄책감 들어선 평생 유지할 수 없다. 이렇게 식탐이 폭발해버려 결국 원점으로 돌아간 적이 숱했잖아.'
물론 이것도 머릿속 주장일 뿐이었다.

한번 맛있게 먹은 식사가 일주일 참은 내 노력에 대한 배신이고 재를 뿌린 행위 같았다.

인간없인 살아도 빵이랑 피넛없이 살 순 없어.

과식에 대한 반성으로 서점에 저녁 산책을 나섰는데 또 별생각 없이 펼친 책에서 타로점처럼 내 상황이 나왔다.
인생은 정말 트루먼쇼같단 말이지.

수잔 앨버스의 <감정 식사> 이다.

'저항하면 갈망한다'는 말은 정확히 맞다. 뭔가를 거부할수록 그에 대한 욕구는 더 커지는 법이다.
"무언가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것은 몸이 자꾸만 그쪽으로 나아가 바로 그 행동을 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나는 당신이 즐거움을 주는 음식에 대한 욕구를 부인하거나 저항할 경우 당분간은 버틸 수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당신은 반등 효과를 겪을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초콜릿이 당긴다는 걸 인정하고 먹게 될 것이다. 연구 결과 먹고 싶은 갈망을 충족시키려고 초콜릿을 먹을 경우, 더 이상 갈망이 지속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반면, 위안을 얻으려고 초콜릿을 먹으면 우울한 기분이 끝나는 게 아니라 더 길어질 가능성이 높다.


평생을 다이어트 모드로 사는 것은 좌절감을 들게한다. 식단을 제한할수록 음식에 대한 집착은 커지기 때문이다. 다이어트를 거듭할 때마다 체내의 배고픔 신호를 사용하는 자기 능력에 대한 신뢰는 갈수록 떨어진다.

그 짧은 사이에 내 사연을 누가 제보해 책으로 만든 것일까? 나도 정확히 정리 못하는 내 심리를 단순명쾌하게 정의내린 책의 문장을 보면 웃음이 실실 나온다. 인간은 너무 불완전하고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장화처럼 귀여운 사라다빵~

아무튼! 다이어트의 문제는 ~~를 참는다. 라는 다짐에서부터 온다는 것이다. 참는다는 것은 곧 늘 그 대상을 떠올리고 집착하게 만든다는 것과 같다.
내게 그 대상은 빵이었다. 저녁 식단에 올라온 빵을 다먹지 않고 하나만 집어먹는건 의외로 가능했는데, 밀가루가 몸에 안좋다고 생각하고 난 후 '밀가루없는 빵 만들기'를 찾아보며 빵에 대한 갈망이 미친듯 심해졌다. 금지된 사랑은 더 불타오르는 법..

게다가 요며칠 빵 먹는 먹방을 엄청나게 봐댔다. 평소엔 잘 보지도 않는데..대리만족될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뱃속 봉기를 일으켰다.

재닛 폴리비와 C. 피터 허먼이 처음으로 주목한 이른바 '에라 모르겠다'현상은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행동 패턴을 가리킨다. 즉 식사를 제한하다가 과식을 한 후 죄책감을 느끼고 더 과식을 하는 패턴이다.
'에라 모르겠다. 어쨌든 다이어트는 망쳤으니 먹고 싶은 거라도 실컷 먹는 게 낫겠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연구에 따르면 다이어트 중인 사람들이 타인의 과식하는 모습을 지켜보거나, 자신이 정해진 칼로리 이상의 음식을 먹었다고 생각할 때도 똑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세상에. '에라 모르겠다'현상이 실제로 있는 이름이라구요..?
그리고 먹방이 실제로 에라 모르겟다 효과를 불러온다구?
난 공짜로 사회실험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의지력엔 죄가 없었다!

수용이 식생활 관리에 어떻게 도움이 될까? 우선 엄청난 양의 감정적 에너지를 절약해준다. 혹시 '가장 꼭대기 선반에 있는 초콜릿은 잊어버리자. 아예 생각을 하지말자'고 다짐한 적이 있는가? 그것은 사고 억제 행동이다. 명백하게 존재하는 감정과 생각을 내리누르려 애쓰고 있다는 것이다.
억제나 억압보다는 인정이 보다 건강한 대안이다. 먹고 싶은 갈망이 있음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 더 나은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깨끗한 물, 목재, 금처럼 자제심은 한정된 자원이다. 당신은 까다로운 사람들을 대하고, 스트레스 가득한 상황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며, 건강에 좋은 음식을 선택하느라 하루에도 여러 번 자제심을 발휘한다. 그러나 1일 자제심 총량을 다 써버리면, 분노와 공격성 같은 감정을 관리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이렇게보니 내가 참 대견해진다. 하루종일 미친사람들 사이에서 자제심을 발휘하고, 욕을 참고(가끔 문서창에 친다.) 집에 와서 빵까지 자제하다니..
사실 스님도 깨끗하고 조용한 사찰에서 지내니 수양식이 가능한 것 아닐까?  반면 이런 messy한 환경에서 자제하는 나 정말 대단해.

바나나차차 군함

앞서 나는 초콜릿을 가끔 먹는 사람들이 전혀 먹지 않거나 항상 먹는 사람들보다 날씬하다는 연구 결과를 언급한 적이 있다.
'가끔'과 '항상'은 다르다는 점에 유의하라. 전혀 먹지 않는 경우는 쾌락의 단절을 내포한다. 적당히 먹는 사람들의 식단에는 쾌락이 자리 잡고 있지만, 쾌락이 그 식단을 장악하지는 않는다.
긍정적인 대안은 쾌감을 주는 음식을 식단에 반영시키되, 먹는 빈도와 양을 관리하는 것이다.

음식 결정은 쾌락에 의해 주도되며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괴로운 마음이나 죄책감 없이 즐거움을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쾌락을 관리하는 것이다.

- 어떤 음식이 당신의 감각을 열반에 들게 하는가?
쾌락을 유발하는 음식을 인정하기.


골자는 이것이다. 내게 쾌락을 유발하는 음식을 인정하자. 피하지 말되 관리하자. 내 통제 하에 두자.
내 감각을 열반에 들게 하는 음식. 듣기만 해도 설렌다.
내일은 주문해 둔 통밀빵이 온다. 맛있게 구워서 도시락에도 싸가고 주말엔 커피랑 즐길 것이다. 룰루레몬.

크로와상 향기는 거의 약이지 뭐.

혹시 당신이 과식을 했더라도 너무 자책하지 않기 바란다. 죄책감은 쓸모없는 감정이며, 반드시 행동 변화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 신체적으로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더부룩함, 무기력함) 기억하는 데 전념하고, 그것이 상세할수록 좋다. 어떤 면에서 기억과 감각적 디테일은 과식으로 이어지는 감정의 악천후로부터 당신을 보호해줄 감정의 우산과도 같다.

개인적으로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라는 둥 과식을 포장하고, 잘못을 했는데도 어화둥둥 달래주는 듯한 표현들이 싫은데, 이 말은 아주 위안이 되었다.
'죄책감은 쓸모가 없기 때문에 느낄 필요가 없다. 차라리 다음에 도움이라도 되게 불편했던 증상들을 기억하라.'
이 얼마나 실용적이면서도 느글거리지 않는 스윗한 위로인가.

폭식은 안좋다. 하지만 그 때문에 느끼는 스트레스는 더 해롭다.
폭식의 마그마가 터지지 않도록, 쾌락의 음식들을 적당히 먹고 관리하자. 많이 웃고 걷고 푹자면 된다.

다음날 '박창희의 건강한 삶을 위해' 칼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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