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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는생각

안읽씹의 망상

by 일인분 2023. 2. 16.

얼마 전 서류를 찾느라 휴직에 들어간 전임자에게 연락을 했다. 그녀는 막달의 임산부였다. 웬만해선 연락을 하지 않지만 급한 상황이라 카톡을 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답변이 차가웠다.
[글쎄요. 거기 없으면 없을 텐데요~]
원래 굉장히 따뜻한 스타일이었는데 뭔가 날이 서있는 듯 했다. 그때부터 가슴이 무거워졌다.
'내가 너무 무례했나? 너무 다짜고짜 물었나?'

바쁜 와중에도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늘 반복되는 나의 걱정 루틴이다. 상대방은 별 반응 안보였는데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게 망상인걸 알면서도 맘이 편해지지 않는다.

마음을 얼른 털어내고자 괜찮다고 찾았다고 답장을 보냈다.
그런데 이번엔 답장이 없었다. 몇 시간이 지나도 1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건 분명히 안읽씹이다. 뭔가 마음이 단단히 상한거야.'
일은 일대로 하면서도 가슴이 돌로 누른것 처럼 무거웠다. 수십번도 더 '씹으면 어때? 그러라지 뭐. 상관없어.'라고 되뇌였지만 생각은 보란듯 원점으로 돌아갔다.

퇴근 시간, 무거운 마음을 끌고 집에 가고 있었는데 답장이 왔다.
맙소사. 아기 사진이었다. 그녀는 아기를 낳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몰려왔다. 무엇보다 내가 우스웠다. 출산을 하느라 답장하지 못한 것 뿐인데 인간의 뇌는 단박에 최악의 상황까지 치달았다.
이런 일이 인생에 얼마나 숱하게 많을까?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상황을 나 혼자 곡해해 스스로 피를 말린 시간들이 엄청날 것이다. 문제는 모든 원인을 내게서 찾는다는 것이다.

내가 실수를 했을까?
내가 방금 어떤 행동을 했길래 팀장님은 한숨을 쉴까?
저 눈빛의 의미는 뭘까?

나란 사람은 정말 안간힘을 써서 세상을 피곤하게 산다. 심리상담 이후 잠시 마음을 또 멀리했던 것 같다. 운동처럼 마음도 꾸준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병든다.
요즘 부쩍 힘들다. 사람들 사이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는게 녹록지 않다.

해리포터 레거시. 이 게임 속에 갇혀 살고 싶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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