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동기가 죽었다.
3년 전 발병한 암 때문이었다. 그 애와는 동기 중 친한 편이었고 사적으로도 종종 만나던 사이었다. 어느 날 머리가 계속 아프다고 하더니 몇 번의 검사 끝에 뇌종양을 선고받았다. 그때 그 아이의 나이는 20대였다. 나도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얼마 전까지 멀쩡히 웃고 떠들던 건강하고 빛나는 20대가 암 선고라니.
그 애는 휴직을 했고 방사선 등 항암 치료를 했다고 했다. 같이 친했던 언니와 오랜만에 만났을 땐 머리를 다 밀고 가발을 쓰고 있었다. 살도 많이 빠져있었다. 발견된 암은 다 제거했다고 했는데 힘든 치료 때문인지 얼굴에 병색이 느껴졌다. 예쁜 얼굴은 그대로였는데 뭔가 생기가 가셔있었다.
병이라는 건 사람의 얼굴에서 빛을 거둬가고 그림자를 드리운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됐다.
자주 보진 못했지만 가끔 연락할 때마다 안 아픈 사람처럼 백수가 적성에 맞다고 했다. 중간에 누군가가 척추로 전이됐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지만 그런 내색 없이 내년에 벌써 복직이라며 아쉬워하길래 괜찮은가 보다 했다.
그리고 며칠 전 출근길에 그녀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내 생각과 다르게 내 뇌는 그녀의 죽음을 예상하고 있었던 걸까? 놀라긴 했지만 크게 슬프지 않았다.

제일 먼저 들었던 감정은 허무함이었다.
최근 알던 사람이 둘이나 죽었다. 인생이 너무 허무하고 허망하다. 죽음이 정말 멀리 있지 않은 것이 느껴졌다. 드라마 '지옥'에서 랜덤하게 받는 선고처럼, 나이에 상관없이 어디든 도사리고 있다.
젊거나 예쁘거나 잘 먹거나 어린 자식의 엄마이거나 결혼을 앞두고 있거나 상관없이 죽음은 온다. 그에 대한 해석은 남겨진 사람들이 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슬픔은 가는 사람보다 남겨진 사람의 몫이 큰 것 같다.
'죽음' 자체보다는 죽음이 다가오는 걸 알고 그때까지 견디는 시간이 고통일 것 같다. 그래서 오래 앓다 가는 것이 가장 무섭고 힘들 것이다.
장례식장에 가서도 실감은 나지 않았다. 환하게 웃고 있는 영정사진은 나와 함께 가서 찍은 증명사진이었다. 그 사실이 짠하긴 했지만 또 그다지 슬프지 않았다.
함께 간 동기들은 모두 힘들어했다. 계속 울었고 돌아와서도 함께 했던 단톡방에 추모글을 올렸다.
정말 솔직해진다면 난 인터넷이나 뉴스에서 보던 제3자의 죽음이 오히려 더 와닿았다. 매일 보던 사람이 아닌 이상 그 사람의 죽음을 다들 어떻게 체감하고 슬퍼하는 것일까?
나만 이상한 것 같았다. 조금 억지로 울고 슬픈 척했다.

그날 알게 됐는데 같이 친했던 언니는 얼마 전 우울증 비슷한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이유 없이 자꾸 쓰러지고 몸이 아파서 온갖 검사를 다 하다 결국 스트레스 때문임을 알게 됐다고 한다.
이 사실이 내겐 더 충격적이었다.
그 언니와 그 애와 나는 입사 때부터 성향이 비슷해 종종 만나곤 했다. 불과 5년 전인데 오래전 일처럼 느껴진다. 그땐 다들 어리고 밝았다.
만날 때마다 잘 먹고, 회사 사람들 험담을 하며 웃다가 3개월치 출근용 옷을 쇼핑하고, 내일 출근하기 싫다고 하며 헤어졌다.
언니는 살을 뺀다고 혼자 걸그룹 춤을 연습하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살이 빠지고 피곤해 보이는 모습으로 나왔다.
모두 왜 이렇게 살까? 돈 벌기 전보다 못한 모습으로. 얼굴에서 생기를 잃어가며 삶을 지속한다. 나 역시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계속 든다.

사는 게 뭘까 싶다. 누군가는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라고도 하고, 하기 싫은 것을 참고 살 때 성장한다고도 하는데 정답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다들 자신이 몇 년 사는지도 모를 텐데.
죽음이 먼 얘기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죽는 건 무섭다. 삶의 활력을 잃는 건 더 두렵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가치 있다고 하는데 사람들은 다 죽음을 생각하고 가치 있게 살까? 아무 생각 없이 놔둬도 삶은 살아진다. 그걸 두려워하며 살아야 한다. 나만 죽음에서 벗어나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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