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끝나 직장에 복귀한 첫날이었다.
항상 상담실에 들어가면 ^.^이 표정으로 날 빤히 바라보시는데 그 시간이 참 멋쩍고 민망하다.
이렇게 어색할 때면 몸에 억지로 밴 사회생활 멘트가 팝업처럼 튀어나온다.
"명절은 잘 보내셨어요?^^;"
오늘 12번도 더 한 멘트다. 번뜩 9만 원이나 하는 상담시간을 이렇게 보내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본론을 꺼냈다.

본가에 다녀왔고 늘 그렇듯 만 하루 보내는 것이 한계인 것 같다고, 부모님과 있으면 답답하고 불편해진다고 했다.
어떤 면이 불편했냐고 질문하자 말이 술술 나왔다.
엄마는 늘 우릴 자랑스러워한다. 이른 나이에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 자리 잡은 자식들을. 본인은 남편 복도 부모 복도 없었지만 자식 복만큼은 타고났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항상 자랑스러운 듯 전해준다. 당연히 그런 말들은 날 점점 더 옥죄여온다. 나이가 들면 더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건 착각이었다.
문제는 나도 그런 엄마를 보며 갑갑함과 동시에 뿌듯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저렇게 자랑스러워하는 엄마를 도저히 실망시킬 수가 없다.

그리고 아빠 얘기를 했다. 집에 가면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에 대해. 아빠의 흡연과 반찬 투정, 엄마에게 함부로 하는 권위적인 모습들. 얘기하다 보니 과거 가장 안 좋았던 기억까지 치달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삐걱거린 집안 분위기는 고등학교 때 최악을 맞이했다. 아빠는 매일같이 술에 취했고, 새벽에 들어와 우릴 깨웠고, 엄마와의 싸움으로 이어졌다.
난 매일 반복되는 스트레스를 풀 방법을 몰랐고,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그런 날이면 비슷한 수준의 아버지를 둔 친구와 문자로 악담을 퍼부으며 버텼다. 아빠를 당장 죽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게 아니었으면 제정신으로 못 버텼을 것이다. 아니, 그걸 제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안 좋은 선택을 했다. 힘든 시간이었다.

아무에게도 할 수 없었던 말들을 하고 나자 눈물이 터져 나왔다. 목이 메어 말을 이어갈 수도 없이 한동안 바닥을 보고 울었다. 정말 오랜만에 이렇게 울어봤다.
아직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빠를 죽이거나 악다구니를 쓰며 소리 지르다 깨는 꿈을 꾼다. 복합적 트라우마라고 하셨다.
가부장적이고 말이 통하지 않는 폭력적인 아빠와, 거기서 날 보호해주지 못하는 엄마. 그리고 그런 엄마에게 걱정 끼치지 않으려고 했던 어린 나의 노력이 억압이 되었고 그게 지금의 내 기질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거절 못하고, 페르소나를 두텁게 만들고, 내 감정보다 남의 눈치를 보고 그것에 맞춰 행동하는 아이가 내 안에 있는 것이다.

나는 감정을 제대로 수용받지 못했다. 부모의 역할은 그 감정을 긍정해주고 받아들여주는 것인데 그럴 곳이 없었다.
일단 내게 필요한 작업은 과거의 나의 감정을 떠올리고 이해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게 '애도'의 과정이라고 한다.
상담을 평생 길게 받을 수 없으니, 혼자 있을 때라도 힘들지 않은 선에서 계속 떠올려보라고 하셨다.
고통스러운 과정이겠지만 계속해서 떠올리고 감정을 다 이해하고 나면, 나중엔 훨씬 수월하게 과거를 직면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과거의 내 감정을 떠올릴 때 절대 '가치평가'하지 말라고 하셨다.
내가 했던 행위에 대해 부끄럽다고 계속 말하자, 왜 남의 시선에서 얘기하냐고 하시며 일단 내 안에서 들었던 감정은 절대 부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게 불필요했고, 감정적이었고, 어른스럽지 못했고..' 하는 식의 평가를 하면 나마저 내 감정을 받아주지 못하는 것이고, 그럼 내가 마음 둘 곳은 아무 데도 없는 셈이다.
언제 내 안의 심연이 다 탈지 모르겠다. 아직도 내게 과거는 감당하기 힘들고,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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