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정말이지 별일이 없었다. 이번 주 연차를 2일 냈기 때문에 몰아서 일하느라 감정을 느낄 새도 없었다.
동료와 칼국수까지 맛있게 먹고 상담소로 향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늘 하고 싶은 얘기가 있냐고 하셔서 딱히 없다고 하고 멋쩍게 웃었다. 1대 1 좁은 공간에서 눈을 마주 보는 건 왠지 힘들다.
별 중요하지 않은 얘기를 이것저것 하다가.. 누군가에게 서운하거나 화가 나면 그 사람과의 거리를 두고 관계를 서서히 안에서 손절한다는 얘기를 했다. 예전부터 감정적이 되는걸 굉장히 경계하고 두려워했다.
서운함이 느껴지면 아이 같은 내 모습이 견딜 수 없어 그냥 그 감정을 무시해버렸던 것 같다.
이건 서운할 일이 아니고,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내가 서운함을 느껴선 안된다는 내면의 암시를 많이 걸었다.

상담사께선 내가 부정적인 감정을 많이 외면하기 때문에 해결이 안 되고 쌓인다고 하며,
"이성적으로 사는 것이 좋다. 하지만 이성적이려면 일단 자신의 감정을 다 알아차려야 한다.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알아야만 조절이 가능해 이성적 판단과 행동이 가능하다."라고 하셨다.
"사람은 본인의 감정을 언젠간 대면하게 돼있다. 이미 느껴버린 감정을 자신마저 느껴선 안될 감정이라고 외면한다면, 언젠간 쌓인 것이 acting out 된다. 그 형태는 워커홀릭, 알콜중독이 될 수도, 본인이 평소엔 하지 않는 행동과 말투가 될 수도 있다."라고 하셨다. 정말 가끔씩 치밀어 올라 내 자제력을 넘어선 분노가 그것일 것이다.

대화를 통해 내가 누군가에게 서운해한다는 것이 곧 그 사람에게 의존함을 뜻하는 것 같아서 두려워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그 첫 기억은 고등학생 때였다. 심지어 여고였는데도 난 친구들에게 감정적으로 의지하지 않음을(실제론 반대임에도) 강조하려고 애썼다. 왜 그렇게 느끼기 시작했을까 시작을 알 수 없었다.
상담사께선 더 거슬러 가보자고 하셨다. 또 생각하다 보니 혹시 엄마가 아닐까 했다.
엄마는 첫째 딸로서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어 이른 나이에 아빠에게 의존했다. 감정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그게 내 안에 인이 박힌 듯했다.

뜻하지 않게 엄마 얘기가 나오니 그 씬에 나오기로 예정돼있던 특수장치처럼 눈물이 흘러나왔다. 전형적인 진부한 클리셰 같다.
부모님이 심하게 싸워 잠을 못 잔 날도 다음날 엄마는 나와 동생을 등교시켰고, 학교에 가며 '이런 상황에서도 학교에 가서 밝게 웃으며 반장 노릇을 하는 내가 마치 청소년 드라마의 주인공 같다.'라고 뿌듯해한 게 기억났다. 의존 안 하고 감정표현 안 하는 것이 테제가 된 지 생각보다 오래인 듯했다.
의존 얘기를 하다가 깊고 어두운 내면의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말하게 됐고, 영화적 눈물은 다큐멘터리 속 오열로 변했다. 그 얘기는 글로 써본 적도 없고, 떠올릴 때마다 감당이 힘들어 묻었던 기억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었고, 그때마다 양손으로 겨우 두 줌의 흙을 던져 묻는 식의 반복이었다.

상담사께선 이 얘기를 앞으로 백 번이고 좋으니 자주 해야 한다고 하셨다. 감당할 수 있는 범위까지 자꾸 떠올려보며 그때 나의 감정을 파악해봐야 한다고 하셨다.
감정일기를 써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감정을 '알고 억제하는 것'과 '느낀 것조차를 부정하는 것'의 차이를 늘 떠올려야 한다. 내가 느낀 감정은 이미 느껴버린 후이다. '안 느꼈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은 도움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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