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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는생각

심리상담_1회차

by 일인분 2022. 8. 16.

드디어 이런 날이 왔다. 내가 심리상담을 받는 날.

두둥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늘 내 정신에 문제가 있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정신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도 생각한다. 동시에 내 멘탈 체력에 대한 자부심도 가지고 있다.
난 우울증엔 걸릴만한 사람이 아니다. 감정에 생활을 잠식당하지 않고, 잠도 잘 자고 먹기도 잘 먹으니까.
내가 병에 걸린다면 그건 우울증이 아니라 화병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게 잘 버티고 있던 내 부품들 중 어떤 부분이 게을리 일하기 시작했는지, 최근 예전 같았으면 문제도 아니었을 일이 내게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주고 있었다.
그러다 저번 주 일하는 도중 심장이 답답해지기 시작했고 그리 좋은 징조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정신과를 가기엔 거부감이 들었다. 난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아니다.

그래서 찾다 보니 심리상담이라는 게 있었다. 멘탈 갑 중 하나로 보이는 박명수마저 정신과를 주기적으로 가서 상담을 받는다고 했다. 갔다 오면 후련해진다면서.
한번쯤 경험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집 근처로 예약했다. 치료가 중점이 아닌 전문 심리상담 센터였다. 심리상담사들이 여럿 소속되어있는 듯했다.

예약이 꽉 차있어 휴가 중으로 날을 잡았는데 정말 잘한 일이었다. 일하던 주에 갔다면 내 감정을 차마 주체할 수 없었을 것 같다.
말하고 싶은 게 뭔지 가기 전 글로 정리를 했다. 물론 막상 가면 정리한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정리하면서도 나는 내 문제점과 원인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성장기 가족 환경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지금은 운동이나 특별한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없기 때문에 심해졌을 것이다. '이 정도의 스트레스는 모두가 겪고 있는 게 아닌가? 이 정도로 가는 건 돈 낭비가 아닐까?' 계속해서 의구심이 들었다. 상담은 50분에 9만 원이나 했기 때문이다.

비용보다도 가장 큰 의심은 '혹시 내가 내 문제를 부풀려서 말할까, 상담사는 심리학 이론에 끼워 맞춰 뭣도 아닌 트라우마로 판단해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거였다.
내가 오그라들어하는 것 중 하나가 피해자 코스프레이다. 성인이면 짊어지고 가야 할 부분도 '트라우마'라고 규정해버리기 때문에 상처라고 인식하고 징징대며 껴안고 사는 경우가 있다는 말이다. 모두의 감당 가능한 범위가 다르겠지만.. 난 그렇다. 충분히 해소 가능한 일도 우리가 상처, 트라우마, 공황장애라고 겁을 먹기 때문에 병이 되고 악화되는 게 아닌가 한다.

내가 말하면서도 은연중에 내 상황을 객관적인 모습이 아니라 인생의 피해자인 양 묘사할까 봐, 상담사도 들으면서 '무슨무슨 계기에 의해서 그런 피해자가 되셨군요?'(어떤 어떤 콤플렉스에 의해 행동하셨군요? 의 뉘앙스) 하며 끼워 맞출까 봐 의심이 들었다.

결론은 첫 상담부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상담사는 내 얘기를 전반적으로 듣다가, 궁금한 부분에선 끊고 더 자세히 말해달라고 하셨다. 가족관계나 내 살아온 배경까지는 얘기할 시간조차 되지 않았고, 묻지도 않으셨다. 그리고 섣불리 내가 어떤 상태인지, 몇 회 차 상담을 더 해야 하는지 말해주지도 못한다고 하셨다.
어떤 문제인지 짐작은 가지만, 아직 나에 대해 자세히 모르고 상담이라는 건 일정한 커리큘럼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중간에 임의로 관두는 것은 오히려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고 하셨다.

나는 사실 직장에서 한 동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지만, 지금껏 받아온 스트레스에 비하면 별 큰일도 아니고 그 사람 얘기로 소중한 50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금방 지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상담사는 그 부분을 궁금해했고, 지금 내 상태의 원흉인 것 같다고 하셨다. 더 얘기하기도 시간 아까웠지만 말하다 보니 그 사람의 불쾌한 에피소드가 꽤 됐다. 회사 얘기가 오늘 대화의 주를 이뤘다. 직장 사람들과의 트러블..
그리고 늘 무던하고 쿨한 모습이고 싶어 하는 내 성향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들.

상담사는 상담으로 내게 해결책은 줄 수 없다고 하셨고, 난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나에 대해 알고 있고 확신하는 것들이 진짜 모습인지 궁금했다. 해결책은 나 아닌 타인에게 그 답이 있을 거라고 생각지도 않는다.
다만 내 성격의 분석, 원인의 분석에 대해 상담이 진행될 거라고 하셨고 내가 원하던 바였다. 비용은 원하던 범위가 아니었지만.

수회 차 진행이 돼야 한다고 하는데, 솔직히 비용을 듣고 금융 치료가 된 것 같다. 나오면서 나 정도는 지극히 정상 같고 스트레스도 감당 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왕 여기까지 와본 이상, 심리 분석까지는 마쳐보자는 생각이 들어 몇 회 더 진행해보기로 했다.

다음 주에는 심리분석 테스트도 함께 진행된다. 결과는 바로 알려주지 않으신다고 했다. 상술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은 기록해보며 경과를 지켜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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