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3일 차에 문득 느낀 바가 있다. 머리를 감고 싶을 때 감는 것은 굉장히 행복하다는 것!
휴일에 번듯한 외출이 없으면 이틀 정도는 머리를 안 감기 마련이다. 마트나 보컬 수업 정도는 모자를 쓰고 다녀오면 된다. 휴일에 어디 가려고 머리를 감고 화장하는 것만큼 귀찮고 손해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없다. 주말출근을 극도로 싫어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하지만 하루 반 정도를 버티면 머리가 간지럽고 불쾌한 느낌이 든다. 뜨거운 물로 벅벅 씻어내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베개에 누워 머리 감는 감촉을 상상만 해도 시원하다. 그런 느낌이 들 때, 느지막한 오후에 일어나 씻는 것이다. 찜 샤워를 하고, 벅벅 머리를 감고, 뜨거운 김을 낸 김에 화장실 청소까지 하고 나오면 이만한 개운함이 없다.
영화 '센과 치히로의 모험'에서 오래 묵은 욕탕의 푸른 이끼 때를 벗기는 느낌이다.

이렇게 어차피 놔두면 머리는 감게 돼있다. 근데 출근이나 외출을 위해 눈뜨자마자 머리를 감는 건 왜 이렇게 곤욕일까?
뜨거운 물이든 뭐든 상관없이 기분도 나아지지 않고, 샴푸를 묻히는 행위도 마치 치약 만드는 공정의 한 부분처럼 귀찮고 무의미하기만 하다. 아침에 하는 드라이는 또 왜 이렇게 덥고 길게 느껴지는지.
같은 행위도 내 의지로 선택했을 때, 아예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매일 하는 아주 간단한 '머리 감기'에도 영향이 큰데 다른 것들은 어떨까.
회사에서 하는 일들은 몽땅 싫다. 심지어 양치도 제시간에 하면 손해 보는 느낌이 든다. 건물 입구에 들어가는 순간 내 감성 기어를 아예 내려놓고 가는 것처럼 웬만한 긍정적인 감정은 느낄 수 없다.
세기말 감성 시대에 유행했던 핸드폰 배경이 생각난다. '학교라는 감옥에 갇혀 교복이라는 죄수복을 입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도 학생 땐 마음 맞는 수감자들이 있어서 나았던 거 같기도 하고..
아무튼 결론은 머리 정도는 감고 싶을 때 감고 싶다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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