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아빠 꿈을 꿨다. 당연히 악몽이었다.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소리를 지르며 깨어난 탓에 마지막 장면만 선명히 기억난다.
아빠는 엄마와 싸우던 중이었다. 나와 동생이었는지 나 혼자였는지 싸움을 말리던 나는 하필 그 순간 아빠를 저지하지 못했고, 아빠는 발로 엄마를 찼다. 엄마 턱에는 퍼렇게 멍이 들었다. 정말 크게.
그걸 본 순간 나는 격노에 휩싸였다. 분노가 아직까지 생생하게 느껴진다. 온몸의 세포가 덜덜 떨려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갑자기 손에 생겨난 칼로 아빠를 찔렀다. 수차례. 하지만 손에는 힘이 실리지 않고, 빈 스펀지를 찌르듯 공기 소리만 나고 피도 나지 않았다. 아빠는 다시 엄마에게 가려고 한다. 나는 계속해서 찌르지만 데미지는 가해지지 않는다. 답답함과 무력감에 미친듯 소리를 질렀지만 소리조차 시원하게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용을 쓰다 짐승같은 신음을 토해내며 깼다. 새벽 3시정도였다.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이런 꿈을 꾸다니 아이러니하다. 아빠와는 최근 이렇다할 트러블도 없었다. 독립을 기점으로 온몸이 떨릴만큼 분노하는 날은 없었다. 그런데 왜 이런꿈을 꾼 것일까?
어제 자기 전 사이클을 너무 격하게 타서 심장박동이 완벽히 안정되지 않은 채 잠든 것 때문일 수도 있다. 심장의 거센 박동을 뇌는 '아빠에게의 분노'로 해석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몸에게 미안해진다.
여태껏 심장 뛴 일 중 가장 꺼내기 쉬운 기억이 분노라니.
다음 가설은 1Q84를 보다 잠들었는데, 읽던 장면이 오오마에가 선구의 교주를 살해하기 전 장면이었던 것 때문이다. 도구는 칼이 아니라 아주 작은 아이스픽 바늘이었지만.
교주는 덩치가 크고 상대의 속마음을 꿰뚫어 무력하게 하고, 어린 여자들을 상대로 수없이 성폭행을 한걸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나보다 큰 상대를 없애야한다는 아오마에의 중압감과 두려움에 잠결에 몰입한 것일까?
둘 다 유력해보인다. 꿈에서 난 항상 무력하다. 아빠의 폭력을 제지할 수 없고, 그에 보복하려 해도 내 능력은 시원찮다. 소리 한번 시원하게 질러낼 수 없다. 그 무력함이 내 안에 남아있는 것이다.
내가 바꿀 수 없는 사람이나 관계가 존재한다는 건 인간의 정신에 꽤나 무리를 준다.
스트레스 상황에선 종종 아빠 꿈을 꾼다. 내용은 늘 이런식이다. 폭력적이고, 무력하고, 극으로 치닫는 결말. 아빠를 향한 분노로부터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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