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금) 비 오는 어린이날

빗소리에 눈을 뜬다. 주룩주룩 퍼붓는 비는 연휴 동안 계속된다. 집에 있으면 비 오는 것도 행운.
오늘도 민생을 살피는 고양이.


3번째 노밀가루 빵을 만들어 본다.
이번엔 당근, 사과를 갈아서 시나몬가루까지 첨가.
향이 처음으로 좋았다.

근데 왜 맛은 그대로일까.
아몬드가루 빵의 한계 같다. 계란빵 냄새와 식감~

하지만 비 오는 날의 시나몬 향은 맡기만 해도 좋다.
큰 화덕에 빵을 구워 집안의 습기까지 말려버리고 싶다.

다시 1q84 삼매경 중이다. 읽다가 허리 아프면 누워서 보다 잠들고, 일어나면 전 페이지부터 다시 읽고 반복.

책 읽는 동안 곁을 지키는 고영이. 혼자 있는 걸 싫어한다.

평일엔 식단관리를 한다.(회사에선 절제가 너무 잘된다. 식욕절제 커피절제 인간절제 모든 게)
간식을 얻는 경우가 흔한데 바로 까먹지 않고 하나 둘 모아 간식바구니에 쌓아둔다. 주말 티타임을 위해서다.
다람쥐가 도토리를 모으듯 소중하게 모은다. 맛과 행복이 배가 될 순간을 기대하면서.
그리고 혼자가 된 주말 조용한 음악과 입맛에 맞게 내린 커피와 함께 먹는 순간, 극강의 엔돌핀이 온몸으로 퍼진다.
소소한 행복이 아니라 극도의 행복, 짜릿함이다. 왜 이걸 놔두고 마약을 할까? 마약범들은 다 밀가루 끊기 다이어트 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5.6.(토)

둘째 날은 일어나자마자 갑자기 서랍정리에 꽂혀 엽서를 정리해 본다. 다 붙이지도 못할 거 뭘 이렇게 사재 꼈는지.. 엽서는 3,4장만 남기고 다 편지지로 써버린다는 '나의 최소 취향 이야기' 작가의 말이 공감이 된다.
이해는 되지만 난 못해요. 아까워서.


남자친구가 사준 어마어마한 선물.
호호 내가 좋아하는 걸 다 모은 이런 백과를 내주다니 도대체 누구신지..(일본이었음)
진짜 미친 기획에 미친 누끼까지.. 보고 있으면 빵이 미친 듯 먹고 싶어 져 밤엔 덮는 게 상책이다.

결국 못 참고 사온 크림빠-앙.
우유. 초코. 콰트로치즈 맛으로 와구와구 먹음.

그리고 3시쯤 어버이날 기념 시골투어를 떠난다. 비가 와서 계곡은 엄청나게 불어있었다. 세상 온갖 소리는 물소리, 빗소리에 묻혔다. 쌀쌀하고 풀냄새가 나는 적막한 시골.

풀을 잘 키울 줄 모르는 엄마아빠지만 그래도 꽃 시장에서 계속해서 꽃을 사 와 도전한다. 저 노란 꽃은 너무 조화같이 생경하고 예뻤다. 이름은 카라. 할라할라할라.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책 표지 같다.
읽다 그만뒀지만 책 분위기에서 비슷한 냄새가 났던 듯.

오늘은 항정살이 기가 막혔다. 엄마가 미리 해놓은 떡볶이에(우리 가족은 완전 쌀떡파) 구운 김치와 고기를 싸 먹고, 오래간만에 자고 가는 기회라 맥주를 들이켠다.
콸콸콸 불어난 계곡에서 나는 물소리를 들으며 쌀쌀한 야외에서 먹는 식사. 오랫동안 기억날 것 같다.

밥 먹고 나선 집에 들어가 과자를 먹으며 책을 실컷 봤다. 엄마가 우리 오면 모닥불 피우려고 참나무를 말려놨는데 비가 종일 온다고 아쉬워했다.
그걸 아는지 밤 되자 비가 멎어 캠프화이아!!

이 동네 와인은 정말 맛있단 말이지.
우리 가족은 자고로 30분 이상 대화하면 모두가 속이 뒤틀리고 싸우게 되는 법인데, 이날은 어버이날의 기적이라고밖에 볼 수 없게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불과 술의 힘인가.

때아닌 두꺼비의 힘인가.

귀염둥이의 힘인가.

시골의 공기와 깊은 밤 때문인지 정말 잘 잤다. 아빠의 잠꼬대와 코골이에도 깨지 않고 숙면.

시골은 눈이 빨리 떠진다.
짙은 안개와 함께 비가 다시 추적추적 내리고 새소리가 들린다.


배가 내내 꺼질 새가 없다. 이 느낌은 불쾌하지만 그래도 계속 들여보낸다. 시골은 그런 곳이다. 달리 방법이 없다.
시골에선 또 커피도 계속 당긴다. 쌀쌀하고 맑은 공기를 맡으면 절로 커피 향이 떠오른다. 이곳에선 인스턴트 가루 커피도 맛있다.
회사에선 웬만한 커피는 다 별로여서 비싼 커피를 이것저것 사마셔봤는데..역시 커피마저도 중요한건 내 마음이었던가.

올해 마지막 두릅과 함께 어죽을 먹는다. 김치 수제비가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남기진 않았다. 날씨 탓을 해본다.

도심에서 가져온 카네이샨~
집에 있을 땐 예쁜지 몰랐는데 여기 있으니 새삼스레 탐스럽고 예쁘다. 역시 만물엔 제자리가 있는 법이다.
이렇게 효도관광과 연휴는 끝이 난다. 알차게 보낸 만큼 길게 느껴졌지만 그 반작용으로 회사 복귀하는 데 거부감이 커졌다. 전날 저녁부터 우울하고 자꾸 혼잣말이 나왔다. 진심으로. 정말 정말 다니기싫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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