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지방 다이어트가 본의 아닌 '인간 다이어트'까지 되고 있다. 정확히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을 대하는 가면 다이어트랄까.
처음엔 살 빼고 있다고 사실 그대로를 얘기하는 것만으로 얼마나 힘이 들었던지.
점심 도시락을 싸왔을 땐 약속이 있다고 둘러대고 사람들이 올라오기 전 얼른 먹어치운뒤 산책을 나갔다. 간식을 돌리는 직원에겐 다 먹은척 맛있었다고 동조하고, 어제 저녁 메뉴를 물으면 치킨이라던지 흔한 것 하나를 둘러대곤 했다.
그러다 인바디를 측정한 날, 한 직원이 1키로는 빠졌냐고 묻길래 약간 억울한 마음에 4키로 빠졌다고 말해버렸다. 그 직원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팀원 모두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ㅇㅇ씨 4키로나 뺐대요!!"
우리 팀원은 팀장님 빼고 다 여성이다. 여자들 사이에서 다이어트 성공이란 그게 누구든 질시의 대상이 된다. 아직 나이가 젊어서 잘 빠지는거라고 마흔 넘어보라는 사람, 뺄 데가 어딨냐고 호들갑 떠는 사람 등 예상했던 반응은 모두 나왔다.
그런데 막상 사람에 대한 염증은 잠깐 일었으나, 생각보다 괜찮았다.
그 이후엔 간식을 거절하기도 쉬워졌고 뭘 하든 '난 벌써 재수없는 사람인데 뭐.'라고 생각하니 밝히기가 쉬웠다.
두번째 도시락을 싸갔을 때도 약속이 있다고 말했다가 문득 메뉴 지어내기가 싫다는 생각이 들어 '사실은 도시락을 싸왔다고, 나와의 약속이었다'고 말했다. 반응이 또 생각보다 괜찮았다. 아침에 도시락 싸오기 힘들지 않냐는게 전부였다.

사실은 지금껏 내가 과민하게 군 탓에 사람들이 더 나를 침범했던게 아닐까? 피곤해지기 싫어 괜히 둘러댄 거짓말이 내 가면을 견고히 만들고, 그만큼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더 치댄 것일 수 있다.
이번 '나혼자산다'에서 내 롤모델같은 사람을 발견했다. 아나운서 김대호님이다. 마이웨이를 몸소 보여준다.
어른이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많이 알고있는 사람'같다. 내가 뭘 해야 행복한지 알고 혼자 둬도 좋아하는 일들을 하며 무력하지 않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이 어른이다.
난 기안84를 좋아하고 그의 실행력과 남 눈치 보지않는 주관을 높이 사는데, 김대호님은 거기에 독립성을 더한 느낌이다. 지구에 혼자 살아남는다고 해도 거뜬히 살 것 같은 사람.
그는 "남들이랑 다르게 사는 게 너무 좋다. 어느정도 비슷하게 살면 하나하나 비교가 되지만, 아예 다르게 살아버리면 비교할 대상이 없어서 좋다."라고 했다.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있지만 암석이 노출된 산 밑의 자연인st 집에서 살고, 유지비 3만원 드는 다마스를 끌고, 동료들과 굳이 친밀감있는 사이가 될 필요는 없다곤 한다. 특히 스몰토크에 단답으로 일관해버리는 모습. 모든 특성 하나하나가 존경을 자아낸다.

현실에서, 그것도 공적인 조직에서 저게 얼마나 사람들이 씹기 좋아할 안줏거리인지 알기 때문이다. 난 항상 그런 사람들에게 환멸감을 느끼며 그들을 혐오했다.
'왜 나는 이런 경직된 조직에 속하게 됐을까, 왜 내 주변엔 온통 저런 사람들밖에 없을까.'
하지만 그 사람들이 보통사람들이고 내겐 용기가 없었던 것 뿐이다. 어떤 집단에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좇으며 양쪽의 균형을 잘 맞추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오히려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의 주관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사람에게 무례하게 굴거나 쉽게 침범하지 못한다. 거절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내 취향과 주관을 드러내는 게 자연스럽게 나와 지켜야할 거리를 보여준다.

이번주는 정말 회사 인간들이 싫어 당장 그만두고 빵집이나 차리고 싶었는데, 이런 나를 알고 또 지침서를 내려줬다. 믿는 신은 없지만 세상 일이라는 건 항상 기묘하다.
다음주는 이 지침을 적용하는 걸로 또 버텨봐야지. 기다려라 인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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