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엔 주는 쪽과 받는 쪽이 있다. 늘 그렇지 않다고 해도 주된 포지션은 있는 법이다.
나와 절친의 관계에서 나는 항상 주는 쪽이었다. 갑작스런 이벤트던 조언이던 격려건 주는건 늘 나의 역할이었다.
자연스럽게 내가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다. 모든건 나로 시작해 친구에게로 흘러야 맞는 방향이니까.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 신처럼 이런저런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놀이가 재밌기도 했다. 친구가 내가 제시한 방향대로 나가지 않으면 속으론 또 말뿐이라며 답답해했지만, 사실 그걸 즐겼던 것 같다.
그런데 그 관계가 전복되는 시점이 왔다.
내게 좀처럼 없는 침체기가 찾아왔고, 난 긍정적인 조언도 허울뿐인 응원도 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아이러니하게 친구의 리듬은 최고조였다. 그녀는 내가 몇년을 조언해도 안되던 운동과 생활습관, 의욕적인 모습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내 침체기보다 견디기 힘든건 그녀의 열정적인 모습이었다. 매일하던 빨래와 청소마저 무기력해질 무렵, 바뀐 몸과 세상이 다 즐겁고 아름답다는 그녀의 찬사는 불편하기만 했다.
내 그릇이 그런 것이다. 눈을 질끈 감고 호응하기도 몇차례, 나는 지쳐버렸다. 그 사이에 운동만 갔어도 이렇게 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은 무조건 운동을 가야겠다.' 부러진 허리와 정신머리를 붙잡고 돌아온 집엔 선물이 와있었다.
꽃다발이었다. 보낸이가 적혀있지 않았지만 친구라는걸 알 수 있었다. 내가 그녀의 슬럼프에 했던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막상 받아보니 굉장히 좋았다. 즉각적으로 기분과 연결되는 꽃 향기와 선명한 색깔.
받는 입장이란 생각 외로 괜찮았다. 왜 그렇게 위에 있는 것에 집착했을까?
역시 주는 행위조차 나를 위한 이기적인 기반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내가 위에 있음을, 넓은 아량을 가지고 있음을 스스로에게 증명하는 행위이다.
그렇게 억지로 붙들고 있느라 마음은 지옥이었다. 사람의 입장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 막상 받아들이면 아무것도 아닌 문장에 내 컨디션을 걸 일은 아니다.
주변 조건이 어떻게 변하든지 매순간 내 기분의 멱살을 쥐고 있는 주인은 나라는 것을 생각하자.
어쨌든 오늘은 작은 조건 덕에, 운동과 청소도 하고 꽃 향기와 함께 간만에 후련하고 기분 좋은 밤이다.
적 는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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