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엔 회의실에서 낮잠을 자거나 혼자 사람없는 카페에 가곤하지만 오늘은 허리가 너무 아팠다. 벌써 일주일째 운동을 안했기 때문이다. 좀 걸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책을 하나 집어 나왔다.
따뜻한 가을볕이 들어 날씨가 최상이었다. 골목길을 걷다보니 사람없는 공원이 나왔다. 사람없는 카페에 공원에..회사는 싫지만 이 동네는 좋아할 수 밖에 없다.
공원 정자에는 마침 돗자리도 깔려 있었다. 벌러덩 드러눕고 싶은 생각이었지만 일단 고상하게 앉아 책을 폈다. 하지만 역시 누울 걸 그랬다. 고요함이 5분도 가지 않아 할머니 할아버지 둘이 정자로 걸어오고 있었다. 안전 지킴이라고 쓰여있는 조끼를 입은 두 분은 한 조로 편성된 것 같았다. 앉자마자 할머니는 주섬주섬 가방에서 간식을 꺼냈다.
밥맛이 없어 식사를 거르셨다는 할아버지의 말에 할머니는 과자를 하나 더 건넸다. 알게된 지 얼마 안된 것 같은 두 분은 식사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먹는 정이라는게 무시못하는 거예요."
"그럼요. 식구라는게 뭐예요. 한솥밥 먹는다는거잖아요."
그리고 안듣는 척 앉아있던 내게도 요구르트를 건네셨다. 서른이 넘은 나를 학생이라고 불러주시면서..
쌀과자를 맛있게 드시던 할아버지는 고소하고 맛있다며 반을 내게 주셨다. 할아버지가 밥맛이 없었던건 먹는 정을 함께 할 사람이 없어서였을까?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시끄러울까 걱정했던 사람들이 건넨 먹을 것 하나로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이게 식정일지도 모른다.
난 혼밥의 즐거움도 좋아하지만, 좋아하는 사람과 상을 같이 차리는 것도 좋아한다. 정확하게는 조합을 구성하는 과정을 좋아한다.
독립 전까지 부모님의 맞벌이로 동생과 저녁을 차려먹곤 했는데,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돈까스는 몇개나 튀겨야 할지(항상 몇개 못먹게 한다고 동생은 앙금으로 남아있다고 하지만) 소세지를 계란에 묻혔으니 볶은김치를 놔야 덜 느끼하겠지' 생각하는 과정이 즐거웠다.
지금도 동생과 엄마, 남자친구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식사하는 건 다른 어떤 약속보다 편하고 행복한 시간이다.
내가 밥맛이 없어지는 일은 통 없지만, 밥맛이라는 건 좋아하는 사람과 편안하게 즐길 때 도는 것 같다. 그들과 먹으면 항상 과식을 하니 말이다.
먹는 정이 밥먹으며 드는 정도 있겠으나 그건 법칙이라고 할 순 없다. 지난 5년간 회사에서 그런 정은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먹는 정이란 함께 있을 때 편안하고 밥맛 도는 상대와 함께하는 식사에서 깊어지는 정이 아닐까 한다.


'적 는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잘 참는 아이 (0) | 2021.11.21 |
---|---|
주는 쪽과 받는 쪽 (0) | 2021.10.28 |
자랑은 왜 하는가? (0) | 2021.10.26 |
단면 속 선의 (0) | 2021.10.12 |
주는 건 싫고 받고는 싶다_부끄러운 생일 (0) | 2021.10.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