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일과 인간관계가 모두 지긋해진다. 그때마다 난 도피처를 찾는다. 책이기도 운동이기도 후원이었다가 레고이기도 하다. 이번엔 조용한 카페였다. 전에 출장을 다녀오다 길을 잃어 발견하게 된 조용한 주택 형태의 2층 카페가 생각나 가보기로 했다.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찾아간 카페엔 주인과 나뿐이었다. 회사에서 대화를 많이 하는 편도 아니지만 잠시 인간 속을 벗어나 있다는 것만으로도 휴식이 된다. 비까지 오고 나니 바람이 선선하게 불었고, 사람 하나 없는 카페테라스는 천국 같았다. 커피 값이 비싼 건 no인간 존 프리미엄일지도 모른다. 분위기에 반해 이틀째엔 브런치까지 먹어볼 생각으로 들떠 카페로 향했다.
하지만 또 세상이 날 시험하는 것일까? 테라스엔 사람이 있었다. 아니, 사람 없이 짐만 있었는데도 난 절망했다. 그게 담배와 구찌 클러치백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mbti를 신봉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보다 명확히 사람의 성질을 보여주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바로 소지품이다. 그중에서도 특정 물품은 100%에 달하는 명중률을 보여준다. 내겐 구찌 클러치백과 짝짝이 신발이 그 예다. 구찌 클러치백을 끼고 말보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백이면 백이십이 나와 안 맞다. 이래서 과거 미팅에선 소지품으로 상대를 골랐던 걸까? 참으로 합리적인 방법이다.
아니나 다를까 자리의 주인들이 돌아왔고, 그들은 ㅈㄴ와 ㅅㅂ없으면 말할 수 없는 게임을 하듯 시끄럽게 욕을 버무려 대화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나와 전혀 맞지 않는 사람과 내 선택이 겹쳤단 말인가. 세상은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이런 시험 따위에 넘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더 이상 작은 변수에 휘말려 내 기분을 망치지 않겠다. 백기를 들고 1층으로 내려가 야외 온실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 덕에 떠밀려온 자리는 뜻밖에 훌륭했다. 광합성을 잔뜩 하고 기분도 나아졌다.
어쩌면 사람의 소지품은 피곤한 사태를 미리 피할 수 있는 힌트일지도 모른다. 넘겨짚는다고 볼 수 있지만, 피곤해지는 것보단 그 편이 손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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