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종이 책을 가득 늘어놓고 읽다가 진동하는 종이 냄새에 오래된 기억 속으로 소환된다. 바로 초등학교 새 학기 시절이다.
반 배정을 받고 새로운 아이들과 함께 새 학기가 시작된다는 설렘은 교과서를 받을 때 최고조에 이르렀다. 앞에 나와 교과서를 한 권씩 가져가라고 할 때 나는 그중에서도 중간에 껴있는 가장 새 책을 고르려 욕심을 부렸다. 아이들은 책상 위에 높이 쌓인 교과서를 펼친 자국이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한 권씩 펼쳐본다. 이때 각 과목마다 다른 종이의 향이 피어났다. 질감이 거칠고 가벼운 종이의 도덕책에선 신문지 같은 짙은 냄새가 났고, 사진이 많은 사회과부도나 미술책에선 특유의 잡지책 같은 냄새가 났다.
20년도 지난 지금 고흐의 그림이 실린 책 냄새 하나로 그 시절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 무거운 책 꾸러미를 얼른 집에 가져가서 장만해놓은 책 표지를 씌우고 싶은 맘에 낑낑대며 끌고 왔던 단순하고 순수했던 나를 떠올리니 애틋하다.
마들렌 효과라고 하는 이 현상은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현실의 시간을 종종 멈추게 한다. 박완서 작가의 말처럼 나이가 들수록 나는 ‘기억의 덩어리’임을 실감한다. 가끔 팝업처럼 떠오르는 소소하고 강렬한 기억은 나를 잠시 과거로 데려가 숨통을 트여준다. 하지만 애틋한 회상 후 밀려오는 쓸쓸한 여운은 오래 간다.
이렇게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기억은 한번 펼쳐볼 때마다 애틋함이 더해져 더 예쁜 색으로 채색되어 보관된다. 색 없이 빠르게 흐르는 현실을 버틸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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