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저녁을 만들어 먹는 날이 부쩍 늘었다. 건강에 다시 관심을 갖고 난 후 재료를 고르는 것부터 다듬어 입에 넣기까지 모든 과정이 즐거워졌기 때문이다.
오늘은 어제 주문한 생 연어가 온다는 사실에 출근길부터 설렜다. 스트레스가 머리 꼭대기까지 차서 귀에서 김이 나오려고 할 무렵 연어가 도착했다는 문자는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 같았다. 최상의 저녁식사 컨디션을 위해 선선한 공기를 애피타이저 삼아 집까지 걸어서 왔다.
도착하자마자 재료손질에 돌입하는데 이제부터 식사의 시작이다. 이때 조미와 가공은 최소한으로 한다. 신선한 야채와 연어, 문어, 소라를 씻기만 해서 가지런히 늘어놓고 아보카도 오일을 두어번 두른다. 얼핏 지중해식 같지만 옆에는 빠질 수 없는 생와사비와 초고추장도 한가득 담아놓는다. 화룡점정으로 와인까지 따른다. 헤밍웨이인 척 해보려고 산건데 어느덧 한 잔밖에 안남았다.
조용한 집 안 선선한 바람이 부는 창가에 앉아 마시는 술과 연어 한입은 오늘이 평일이라는 사실을 잊게 한다. 사람들과 왁자지껄 즐기는 술자리보다 향과 맛이 훨씬 진하게 느껴진다. 드라마 ‘혼술남녀’에서 항상 혼자서 맛있는 음식과 술을 즐기지만 일정 혈중 농도를 넘기지 않기 위해 알콜측정기를 들고다니는 하석진이 과장된 캐릭터가 아니라 어딘가엔 존재하겠구나 싶다.
혼술의 좋은 점은 자기 페이스를 오롯이 느끼며 마시기 때문에 쉽게 만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온몸이 나른해지며 취기가 올라올 때쯤 사놓고 손이 안 가던 책을 집어 몇 장 읽는다. 취중독서는 몽롱해서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긴 힘들지만 한 글귀, 한 단어가 더 깊게 느껴지는 장점이 있다. 느긋한 식사가 끝나고 나면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돌린다. 깨끗하게 뒷 정돈을 하는 동안 어느새 취기도 개운하게 가신다. 하루종일 품고있던 예민함과 심장을 조이는 답답함을 느긋하게 녹여낼 만큼만 취하고 금세 건강한 컨디션으로 돌아 올 수 있다는 점이 참 좋다.
말 한마디 안하고 그저 읽고 듣고 먹고 흡수만 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휴식 뒤엔 이렇게 건강하게 한 줄 글로 배출도 할 수 있으니 진짜 온전한 휴식이다. 얼마 되지 않는 가을은 이런 작은 풍요로움으로 잔잔하게 차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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