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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서평

품위 있는 삶 - 정소현

by 일인분 2020. 6. 9.

 

 

한참 전 제목에 끌려 읽었던 ‘70세 사망법안, 가결’이란 일본 소설의 결말에 크게 실망한 기억이 있다. 늙고 병들어 내 몸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상황의 죽음에 대해 늘 생각해왔다. 그리고 내가 그 상황이 된다면 한치의 망설임 없이 죽는 걸 바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70세 사망법안, 가결’에서는 공감되지 않는 가족 공동체의 사랑을 앞세워 자극적인 제목과 다르게 훈훈한 결말을 맞는다. 법이 시행되는 모습을 바란건 아니지만, 그런 참신한 소재를 사용해 결국엔 가족의 소중함과 사랑을 깨닫는다는 사고방식이 너무나 뻔했다. 내가 지금 대추나무 사랑걸렸네를 본건가? 하는 허무함뿐이었다.

‘품위 있는 삶, 110세 보험’은 비슷한 소재이지만 훨씬 더 현실감 있게 독자의 마음으로 들어온다.
60세부터 초호화 돌봄 서비스로 노년을 돌봐주고, 치매에 걸릴 경우 안락사를 보장하는 생명 보험. 듣기만 해도 솔깃하다. 하지만 값비싼 비용이라는 설정으로 평범한 사람에겐 노년의 삶을 선택할 수도 없다는 현실반영도 놓치지 않는다.

주인공은 알츠하이머에 걸려 괴물이 된 아버지를 안락사 시키고, 자신도 같은 병에 걸릴 것을 확신하며 이 보험에 가입한다. 아버지의 죽음, 연이은 아들의 죽음까지 모두 자기 탓이라고 생각했던 주인공은 죄책감에 휩싸여 우울하고 냉소적인 삶을 보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안락사 특약이 적용된 치매에 걸리고 난 후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보험사 직원을 아들, 손주로 착각하고 평생 몰랐던 돈 쓰는 기쁨도 느끼며 사는 것처럼 산다. 그리고 자신이 죽어야하는 이유를 납득하지 못한다.

‘과거의 내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내가 미래에 대해 무슨 약속을 했건 그건 잘 모르고 한 개소리야. 내가 살아보지도 않은 시간을 어떻게 알고 그랬겠어. 모르니까 무서웠던 거지. 그 알지도 못하는 것 때문에 도대체 난 인생을 얼마나 허비한거냐.’


치매나 병에 걸려 내가 내 자신이 아닌 상황이라면 죽어도 되는 걸까? 마냥 내가 아니라 가족의 상황이라면 과거의 선택에 따라 변해버린 현재의 목숨을 거둬가도 되는 걸까?

항상 냉철하고 이성적이었던 주인공이 나약한 할머니가 되어 살려달라고 말하는 장면은 찝찝하게 각인되어 긴 질문을 계속해서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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