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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2

중국식 룰렛 - 은희경 울타리 안에 갇혀버린 어른들의 얘기가 이어진다. 내 인생이지만 내가 주인공인 것 같지 않고, 나만 운이 없는 것 같아 생에 큰 애착을 못 느끼는 사람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만나고 살아내는 이야기이다. 은희경 작가의 글은 항상 담백하면서도 염세스러움이 묻어난다. 그래서 좋다. 상처입은 자들을 감싸줘야 한다는 식의 교훈도 없고, 천태만상 인간세상에 대한 환멸과 그럼에도 그 속에서 살아내야 하는 인간의 무던한 받아들임을 보여주는 방식이 유난스럽지 않다. 단편중 '장미의 왕자'에 나오는 우화가 각 소설을 하나로 꿰어준다. 울타리 안에서 장미를 품고 있을 때만 아름다운 모습인 왕자는 평생을 그 안에서만 갇혀 살아야한다. 장미가 밖으로 날아가버리는 순간 왕자는 추하고 빛바랜 모습이 돼버린다. 소설의 주인공.. 2021. 11. 13.
빛의 과거-은희경(섞임의 비극) ‘군대의 비극은 섞이는 것이다.’ 군대 뿐 아니라 우리주변에 섞임으로 인한 비극은 넘쳐난다. 소설의 배경과 비슷하게 나도 여고를 다녔지만 그땐 다양한 인간상이 하나도 거슬리지 않았다. 하지만 사회에 나온 후 그때보다 다양한 것 같지 않은데도 미묘하게 다른 사람들과 섞여 지내는 게 불편했다. 고등학교 땐 나를 비롯한 모두가 인격이 형성되기 전 단계였던 것이다. 다들 공통의 규율만 지키며 지내면 됐고 서로의 다름은 드러날 새가 없었다. 하지만 사회에 나왔을 땐 이미 각기 다른 모양으로 인격이 굳어졌고 그건 더 이상 숨겨지지 않았다. 모두가 다른 것이 명확한데도 섞이려고, 같아지려고 했다. 그것부터가 비극이니 상처와 불편함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남과 다른 것이 그대로 결격사유가 되는 단체 생활에서 내.. 2020. 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