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샤워는 개운하면서도 괴로운 시간이다. 그날의 후회할만 한 언행들, 창피한 기억들이 이때 피어오르기 때문이다. 대부분 이불을 찬다고 하는데 내겐 샤워하는 시간이 그렇다. 마치 끝나지 않는 고해성사 같다.
문제는 고해성사는 시원하기라도 하지, 이건 떠올린다고 전혀 해결될 일도 아니고 마음이 정리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견디기 힘든 상황마다 서랍속에 아무렇게나 쳐박아 둔 감정들이 하나씩 무작위로 튀어나온다. 같은 장면, 같은 생각이 몇 번이고 반복된다. 그 때마다 주의를 환기시키려 악 하고 소리내보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 그 기억에 무던해져도, 삶에 창피하고 괴로운 소재는 얼마든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이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복싱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런 생각이 1분도 들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괴로운 생각들은 몸이 느슨할 때 찾아온다. 해결책도 없는 생각을 뇌는 왜 자꾸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일까? 아주 경미한 트라우마같은 걸까? 그럴만도 하다. 내 뇌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개복치이니까.
이 괴로운 생각을 조금이라도 접어둘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하나 있다. 물론 이것도 아주 잠시 화제를 돌리는 정도이지만. 창피하고 구질구질한 기억에도 불구하고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에 대한 증거를 하나씩 대보는 것이다. 혼자만의 상상이니 남들의 인정은 필요없다. 이때 특히 이성에게 매력있는 요소를 생각하는 것이 효과가 좋다. 뻔뻔하게 늘어놓다 보면 '오늘 저지른 실수 쯤은 내 인격에 그닥 손상을 입히지 못할 정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늘도 개복치는 고해성사 샤워를 마쳤다. 한번 분 바람에 하루종일 앓았지만 그 덕에 극복할 방법을 찾는다. 땀도 흘려보고 글도 써본다. 내 바퀴는 예민한만큼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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