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는생각

단면 속 선의

일인분 2021. 10. 12. 23:59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 길이 막히던 차에 창문 밖으로 동성애 반대 피켓을 든 종교인이 보였다. 자세히 보진 않았지만 '남자 며느리 얻게 된다'는 식의 글귀가 언뜻 보였다.
그 사거리는 유동인구가 많아 온갖 피켓 시위나 도를 믿으십니까가 성행하는 곳이다. 그리고 열이면 열 시위의 내용은 자극적이고 터무니없다. (물론 난 동성애 성향으로 유난 떠는 사람, 그게 싫다고 시위하는 사람 둘 다 싫다.)

그런데 그 다음 장면은 좀 뜻밖이었다. 피켓을 들고 건너던 아저씨는 빨간불이 됐는데도 차를 손으로 저지하며 온 길을 돌아갔다. 으레 '저런 관심병 사람들 행동이 다 그렇지 뭐' 하려던 순간, 아저씨는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부축해 돌아오고 있었다. 일행은 아닌 것 같았다.

예상치 못한 전개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번잡한 사거리에서 빨간 불에 차를 막아가며 선행을 베푸는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다른 집단을 혐오하는 피켓 시위 중인 아이러니함.

선의는 다양한 모습으로 사람들 안에 존재한다. 다만 사람들은 그 마음을 한정적으로 사용한다. 내 편, 나와 뜻을 함께 하거나 도움이 되는 쪽을 향해서만 베푼다. 오늘 그 아저씨가 가진 약자를 향한 사려와 용기가 반대편 약자에겐 칼날이 될 것이다.

누구에게나 착한 사람은 거의 없다. 내가 10분이면 판단내리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은 그들이 보여준 숱한 단면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판단을 최대한 미루고 생각해야 한다. 이 사람이 싫거나 좋은 이유 다 단면에서 얻어진 것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