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는생각

주는 건 싫고 받고는 싶다_부끄러운 생일

일인분 2021. 10. 12. 00:41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어린아이나 보이는 행동이다. 어른이라는 명패를 갖고 싶다면 하기 싫은 일도 감수해야하고 표정도 숨길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난 영유아나 다름없다. 부정적 감정, 대화하기 싫음이 여실히 표정으로 드러나는 걸 느끼면서도 제어가 안된다.

회사 사람들에게 그러는 건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내게 소중한 사람들에게도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심판자라도 되는 양 주변 사람들에게 심통을 부리기 시작했다. 꼭 연예인병 걸린 사람같이 말이다.
이렇게 망가지게 된건 내가 꿈꾸는 인간 이상향의 기준에 주위 사람들이 걸맞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참 멋없고 처절한 도피다.

사실 이상향에 가장 부합하지 못한 건 나 자신이다. 내 주위엔 왜 닮고싶은 훌륭한 사람이 없을까?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내가 훌륭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이유를 인정하기 싫으니 애궃은 남에게 화살을 돌리는 것이다. '내 주변에 이런 사람들만 있으니 내가 이렇지..'하고.

써놓고 보니 정말 역겹다.
뭐라도 되는 것처럼 교양 있는 척을 하더니 유치원생들도 갖춘 미덕도 갖지 못했다. 나같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의 심통에도 불구하고 견뎌주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 본 적이 없다.

서른이 넘은 생일이 지나고서야 느꼈다. 해가 지날수록 대가 없는 축하와 진심은 사라진다. 덜 뿌리는만큼 돌아오는 조건부 친절도 적어진다.
더 어렸을 땐 뿌리지 않아도 적당히 돌아오는 게 있었기에 '안주고 안받고 살겠다.'고 큰소리 치고 다녔다. 그것 또한 어린아이같은 마음이었다. 이제 정직하게 투입과 산출이 맞아떨어지니 내심 씁쓸하다.
그 거품이 사라지고 나서야 대가 없이도 내 옆에 있었던 사람들에 대해 깨닫는다. 처음으로 내 마음의 평화보다 주변 사람에 대한 감사를 목표로 두고 살고싶다.
부끄러운 생일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