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의 반격 - 손원평

어디 한군데가 특출나야만 주목받을 수 있는 이 세상에서 나는 주인공일까, 관객일까?
완벽하게 한 쪽 포지션으로 살 수는 없는 것 같다. 비율은 사람마다 다를테지만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세상이 원하는 건 너무 이중적이기 때문이다. 보통사람과 달리 특별하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성공할 수 있으면서도, '모난 돌이 정맞는다'는 속담이 곳곳에 적용된다. 대중 속에 잘 스며들어 있으면서도 완전히 섞이지 않고 필요할 때 독특한 색깔을 내는 사람을 원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88올림픽 때 태어난 수많은 '김지혜' 중 한명이다. 고집 센 할아버지의 유언으로 하마터면 '추봉'이 될 뻔 했지만 엄마의 목숨 건 투쟁덕에 가까스로 얻어 낸 이름이 바로 지혜이다. 엄마는 추봉이라는 이름의 충격 때문이었는지 무난히 어디든 있을만한 이름을 지어줬고 그 무난함은 아이의 성격과 운명이 되었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나는 남들과 다른 특별한 사람이라고, 주목하라고 온 몸으로 외쳐야 하는 세상에 하필 평범한 김지혜로 태어난 것이다.
그녀는 '작은 김지혜, 김지혜B' 등 정체성 없는 이름으로 불려왔고, 그렇게 무수한 익명 속에 숨을 수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자랑할 것이 많지 않은 삶이었기 때문이다. 항상 '박수치는 삶. 주인공이 아닌 관객. 예술가가 아닌 대중'으로 스스로의 포지션을 정했다.
열정 넘치던 20대 초반엔 비주류의 문화를 위해 일하고 싶다는 목표라는게 있었지만 면접에선 번번이 떨어졌고, 나이는 그런 사정을 봐주지 않고 먹어갔다. 결국 정사원이 될 희박한 가능성을 기대하며 존재 의의도 없는 잡일을 하는 인턴으로 붙어있는 게 현실이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꿈의 실현 가능성이 점점 옅어지자 그녀는 인생의 주변인이 되었다. 지금 속한 집단도 싫지만 그렇다고 현실 타개를 위한 별다른 노력도 하지 않은채, 마치 오르지 않는 토익 점수같이 삶을 보냈다.
'누군가의 비밀을 알 필요도, 환경의 개선을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는 주변인. 그게 나였다. 그러므로 나에게 손해도 이익도 끼치지 않는 일에 나설 필요가 없었다.'
그러던 중 규옥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도 지혜처럼 나이는 많고 비전은 없는 인턴에 불과하지만 현실을 바꾸고 싶어한다. '힘 없는 다수는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지 않지만, 그 생각조차 관성'이라고 말하며 '가치의 전복'을 꿈꾼다.
그렇게 규옥을 주축으로 우쿨레레 수강생 몇명이 '전복'을 위한 모임을 결성한다. 그들은 세상을 바꾸는 큰 일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부당함 하나에 일침을 놓는, 티안나고 끈질긴 방법으로 투쟁을 시작한다.
사무실에서 트림을 일삼는 부장에게 공개적으로 쪽지를 보내 망신을 준다던가, 레시피를 훔쳐 사업으로 승승장구 하는 국회의원에게 계란을 던진다던가 하는 소소한 일이었다.
지혜는 한번이라도 관성에서 벗어나 '난 당신들과는 다르다'라는걸 보여주기 위해 모임에 참여했다. 하지만 정곡을 찌르지 못하고 변방만 도는 한계에 질려 속으로는 그 동질감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저 벗어나고 싶던 모임도 그녀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녀는 그동안 자신도 속여왔던 본인이 아닌 것들에 대해 하나씩 아니라고 말하기 시작한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학창시절 내내 본인을 시종으로 부려먹고 여전히 갑질을 하려는 동창을 향해선 한번도 친구인적 없었다고, 직장 사람들과 같이 밥먹기가 싫을 때 핑계로 만들어 낸 가상인물은 사실 존재하지 않았다고 공공연하게 밝힌다.
이렇게 그녀는 작지만 내가 아닌 것들을 아니라고 표현하며 드디어 정체성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려왔던 꿈을 작게나마 실현하며 소설은 끝이 난다.
작가는 정곡을 찌르지 못하고 빙빙 돌며 던지는 사소한 시도라도 개인의 삶을 변화시키는데는 충분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한동안 나는 입버릇처럼 모든 사람은 또라이라고 말하곤 했다. 여기서 또라이는 부정적 표현이 아니다. 아마 사람들도 또라이보다 흔한 사람이라고 평가받는 것을 더 기분나빠 할 것이다.
지혜도 마음에 드는 직장에서 본인을 채용한 이유가 '또라이들 속에서 평범한 사람으로 균형을 잡아줄 것 같았다'고 하니 자신 역시 또라이라며 입사를 포기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보통 사람'이라는 타이틀에 숨어 살지만 본인만의 또라이같은 특성이 있다.
나를 속이고 나인것처럼 선택했던 특성들을 거둬내고 진짜 나에 맞는 조각들을 하나씩 주워담을 때 내 정체성의 색깔이 드러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