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의 가스라이팅
가스라이팅은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말이 되었다. 일상 농담에서도 툭하면 나오는 정도다. 보통 상대를 자신의 지배 하에 두려고 하는 상황을 말한다. 오늘은 좀 다른 가스라이팅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한다. 칭찬의 가스라이팅이다.
칭찬은 사람을 약하게 만든다. 경계심을 풀어 취하게 만들고 무방비로 만든다.
누군가가 자신의 험담을 했다면 그들에게 적개심을 품을지언정 의심으로 무장한 채 예리하고 강하게 살 수 있다. 하지만 칭찬은 그런 각오를 이내 무력하게 만든다.
나는 칭찬에 약하다. 내 좌우명은 '일희일비하지 말자.'인데 이것에서도 알 수 있듯, 난 타인에게 쉽게 영향받는다. 누군가 날 칭찬하면 앞에선 의연한 척 하지만 혼자가 되면 그 칭찬을 여러 번 곱씹는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 칭찬들은 대부분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날 이용하려 가드를 무장해제 시키는 시도였을 뿐이다.

하루종일 쉬지 않고 사적인 얘기를 해대는 옆자리 아줌마에게 단호해질 필요가 있다고 다짐한 후, 조금 냉정해지자마자 아줌마는 보란 듯 날 칭찬한다. 옆 부서 직원이 날 칭찬하길래 거들었다며, 사람 보는 눈은 다 비슷하다고 한다. 순간 넘어가 그 아줌마에게 조금은 미안해지고 다시 얘기를 들어주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보통 이런 식이다.
칭찬의 가스가 화생방 수준으로 나오는 건 특히 술자리에서다. 술이 들어가면 사람들은 불현듯 평소에 부려먹었던 직원에게 당근을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지 입이 마르게 칭찬을 해댄다.
요즘에 너 같은 직원은 없다느니, 항상 수고 많은걸 마음은 알고 있다느니(당신이 마음속으로 뭘 생각하는지는 필요 없어.) 심지어 외모 칭찬에도 관대해져, 상대가 듣고 싶은 포인트의 칭찬을 잔뜩 해준다.
교묘한 술수인걸 알면서도 매번 넘어간다.
'평소엔 서럽게 만들던 사람이지만 속으론 날 좋게 생각하고 있구나' 싶어 더 충성을 맹세한다.
'다음 약속부턴 거절해야지.' 싶던 사람도 '내게 이렇게까지 고마워하는데..' 하며 한번 더 기회를 주게 된다.

가족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른 부모들은 다 속 썩인다는데, 나는 너희들이 착해서 다행이다."
"나는 남편 복은 없지만 자식 복은 있다."
자유롭고 싶은 내 안의 시도는 엄마가 실망할까 봐 늘 수그러드고 만다.
칭찬이 무서운 건, 거절이 힘든 사람들에게 더 치명적으로 먹혀든다는 것이다.
거절을 잘하는 사람은 칭찬에도 면역이 있다. 남이 하는 칭찬과 내가 하는 거절에는 상관관계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거절이 어려운 사람에겐 다르다.
약은 세상 사람들에게 번번이 당하고 몇 겹의 재고를 거친 후에야 마지막 보루인 '거절'이라는 레버를 당기려는 순간, '칭찬'이라는 안전장치가 막아버린다.
세상이 교활한 건, 이런 타입의 인간을 잘 알아본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겐 칭찬을 더 자주 풀어놓는다. '너 이거 좋아하잖아?' 하며.
그 객관적 사실을 뻔히 들여다보면서도 정신을 차려보면 늘 칭찬가스에 취한 후다. 거절과 단호의 타이밍은 이미 지나버렸다.

나 같은 사람들과 내게 말하고 싶다.
매번 당하느라 세상 사는 게 지쳤다면, 칭찬하는 사람을 욕하는 사람보다 멀리하고 미워해라.
'착한 아이 콤플렉스'같은 건 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칭찬은 의심하고 걸러 듣자.
교활한 세상 같으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