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는생각

심리상담_2회차

일인분 2022. 8. 26. 00:01

첫번째 상담이 끝나고 진단검사 2가지를 주셨다. mmpi(미네소타 다면적 인성 검사)와 문장 완성하기 검사지였다.
mmpi는 우습게 봤는데 한시간이 넘게 걸려 아주 촉박하게 했다. mbti와 다르게 Y or N로만 대답해야해서 하다보니 스트레스를 받았다. 도저히 날 확신할 수 없는 문항이 꽤 됐다. 인간은 역시 자신에 대해 잘 모른다.
결과는 바로 알려주지 않고 상담을 하며 그 검사결과가 어느정도 일관되게 나왔는지 참고한다고 하셨다.

문장완성 검사는 퇴근 후 상담까지 남는 시간에 차 안에서 했는데 몰입이 되어 금방했다.
나에게 아버지란 __.
내가 늙는다면 ___.
가장 두려운 일은 ___.
이런 식의 문항이 2페이지 이어진 검사지였는데 이것도 생각난 답을 바로 적는 식이었다. 중학교 창재시간처럼 재미있었다.
생각해보니 학교생활 이후 이런걸 해볼 기회가 성인에겐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상담이 시작됐다. 이번 주는 딱히 생각나는 열받게 하는 인간관계도 없었고 일도 편했다. 다만 퇴사 욕구가 너무 강해진 것 뿐이었다.
그런데 이유없는 가슴 답답함은 계속됐다. 하루종일 숨 쉬기가 불편했다. 심장이 답답하고 아무리 숨을 크게 들이쉬어도 100프로 들어오는 느낌이 아니었다. 휴가 복귀하고 갑자기 앉아있으려니 허리가 너무 아팠는데 가슴까지 답답하니 10분 앉아있는 것도 고역이었다. 계속 현관으로 나가 숨을 쉬었다.

기분 환기 짤

상담사 선생님이 오늘은 좀 어땠냐고 하니 별 일이 없었는데도 말이 쏟아졌다.
분명 이유를 모르겠던 감정들도 차례로 말하다보니 스스로 원인을 알 것 같았다. 심장이 너무 답답한데 딱히 요인은 없었다고 말하니 그 답답한 증상을 감정적으로 표현해보라고 하셨다. 질문에 따라 답하다보니 많은 게 생각났다.
휴가 때 쉬며 이 일이 의미가 없고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한 것이라는 결론이 났다.
그걸 알면서도 별 뾰족한 수 없이 앉아있는 게 너무 답답하고 한심하게 느껴져 몸의 증상으로까지 나타난 것 같았다.

하루키+빵+커피=몰핀

상담사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거의 90프로는 내가 말하는데 중요한 점은, 질문을 잘 한다는 것이다. 내가 말을 쭉 늘어놓던 중 "그 부분을 자세하게 듣고싶어요." "그 일이 본인 감정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등 적당한 부분에서 대화를 환기시킨다. 사건이 아니라 그 행동을 하게 된 내 내면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

이걸 느낀건, 내내 말을 한건 나인데 상담이 끝나고 소감을 말하려니 갑자기 생각이 저절로 정리되는 듯 했기 때문이다.
이 일이 내게 잘 맞지않는 이유,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 그만둘 것을 전제해도 회사에서 대충 행동할 수 없는 이유를 하나씩 짚어가다 보니 가족의 기대에 대해 말하게 됐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좀 났다.
우는 걸 굉장히 경계하는 편이지만 가족 얘기가 나오면 결계가 깨져버리는 것처럼 손쓸 수 없어진다. 아직 유년기 얘기는 나오지도 않았지만 벌써 감정이 격해지다니.

간간이 기분 환기

어릴 때 진짜 내가 좋아하는 걸 찾지 못한걸 후회한다고 했다. 입시나 취업 등 늘 중요한 기로에서 직접 답을 찾는 게 아니라 최대한 선택을 유보하다가 남는 선택지를 손으로 적당히 추려 골라잡은 듯한 느낌이 들어 그 두가지가 가장 후회된다고 했다.

상담사는 늘 가족의 기대에 부응했던 내가 시선을 내 안으로 가져오는 데에는 어려움이 따랐을 것이고, 앞으로는 더 힘들어도 그것에 초점을 맞춰야한다고 하셨다.
무엇보다 위안이 됐던 건, 선생님도 내 나이 쯤에 새로운 꿈을 꾸셨다고 했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대학원을 갔고, 심지어 그 과정은 굉장히 오래걸렸다고 하셨다. 하지만 공부하는 내내 즐거웠고, 그 일로 직업을 삼은 지금은 아주 만족한다고 하셨다. 시간도 본인의 마음대로 쓰신다면서 본인은 일반 조직 생활은 못할 거라고 하셨다.
나이가 꽤나 있으신 분인데도 조직 생활이 안맞을 거라고 단언하시는 분이 계신다는 것만으로 위안이 되었다. 내가 유난떠는 게 아니라는 거다.

그리고 확신이 생겼다.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고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것.
상담이 끝나니 정말 기진맥진했다. 내면을 들여다보는 건 이렇게 체력을 요하는 일인가 보다.

하지만 상담이 지나간 후에도 가슴 답답함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회사만 가면 다시 생겨서 8시간을 내내 지옥으로 만든다.

에휴 하기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