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인간의 세계관

고양이를 기르면서 꽤나 나와 닮은 점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외면빼고!
가장 큰 건 사람을 귀찮아하면서도 본인이 원할 땐 관심을 갈구한다는 것이다.
정말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이지만 고양이가 그럴땐 귀엽다. 난 사람이라는 게 문제지만.
하루 종일 내 손길을 피해다니다가 갑자기 엉덩이를 붙이고 앉기도 하고, 지나가다 슬쩍 꼬리로 내 다리를 휘감기도 한다. 그래서 만지면 도망가버린다. 내가 원할 때만 옆에 붙어서 적당히 쓰다듬기나 해!라는 듯.

그리고 굉장히 예민하다는 것.
큰 소리를 극도로 싫어하고 새로운 환경에 스트레스를 받고, 심기가 불편해지면 숨숨집으로 숨어버린다.
사냥놀이를 하다가 몇 번 놓치면 '뽀르르'소리를 내며 숨는다. 한번은 집에 설치해 둔 펫캠 마이크 테스트를 해보느라 이름을 불렀더니, 형체 없이 목소리가 나오는 것에 놀랐는지 예민해져서 온 집안을 뛰어다녔다.
더러운 것도 싫어한다. 물론 더러운 것은 자기 기준이다. 난 내 눈에 보이는 곳만 깨끗하고 바닥에 먼지만 없으면 만족한다.
고양이도 더러운 구석엔 잘 들어가면서 화장실에 소변을 안치워주면 대변을 안본다거나, 깨끗한 물이 아니면 안먹는 등 자신의 기준치의 청결함을 통과해야 만족해한다.
모든 자극에 아주 예민한 동물. 제3자의 눈으로 보니 굉장히 피곤하다.

또 아무리 귀찮고 힘들어도 눈앞에 낚시대를 흔들면 움직인다는 것.
매일 가기싫다 그만두고싶다 모든 걸 때려부수고싶다 입에 달고 살면서도 막상 출근하면 눈 앞에 닥치는 일을 개미처럼 군소리 없이 해대는 나같다. 성취감도 없고 잘해내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일단 눈 앞에 일을 던지면 한다. 그런 내 모습은 환멸감이 들게 한다.
체력이 다해 개구호흡을 하면서도 사냥감을 흔들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고양이. 다른 점은 그 행위를 통해 고양이는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점이다. 본질이 다르긴 하지만 그 모습을 통해 나를 봤다.



일광욕을 좋아하고 시원한 곳에 드러누워 늘어져있는걸 좋아한다는 것도 그렇다. 이건 아마 많은 사람들이 고양이를 좋아하는 이유일 것이다.
본가에서 강아지를 키울때도 지금도, 바쁘게 출근할때 정반대의 모습으로 편하게 늘어져있는 동물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펫캠을 설치한 이유도 그것이다.
밖에서 바쁘게 일하고 온갖 스트레스를 받는 중에 캠을 보면, 커튼이 흔들리는 창가에서 늘어지게 자고있거나 의자에 붙은 텍을 혼자 가지고 놀고 있다. 그 모습을 보기만해도 평온해진다.
같은 시간 이 곳과 저 곳의 공기는 얼마나 다른가. 거의 평행우주 수준이 아닐까.


고양이를 키우며 느긋해졌다기 보단 오히려 엄청나게 부지런해졌지만(못가는 곳이 없어 모든 곳을 쓸고 닦아야 한다.) 아침에 골골대는 존재와 함께 10분 더 자는 순간, 글을 쓰고 있는데 적당한 거리에 앉아 새근새근 자고 있는 장면들이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잠시지만 느긋하고 평온하다.
이 상태가 내 인생의 주된 기조였으면 좋겠다.